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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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동안 귀머거리, 벙어리로 살기로 했습니다. 난처한 질문 하지 말아주세요."

정치권에서 비윤계로 분류되는 한 여당 의원은 최근 '나경원 사태'에 대한 생각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친윤과 거리를 유지해 온 다른 의원도 "당분간 조용히 지낼 생각"이라며 "전당대회 이후에나 이런 저런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목소리가 국민의힘 내에서 빠르게 잦아들고 있다. 여러 당권 후보가 약진하며 다양한 주장을 제기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특히 25일 나경원 전 의원이 당 대표 선거 불출마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윤심은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윤 대통령의 여당 장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MB, 박근혜보다 장악력 강해"

윤 정부가 출범한 작년 5월까지만 해도 대통령이 당과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는 미지수였다. 윤 대통령은 2021년 7월 국민의힘에 입당해 3개월 뒤 대선주자가 되고, 이듬해 3월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정치 경험이 짧았다.

그만큼 윤 대통령은 여당에 특별히 신세졌다고 할만한 부채의식이 없었고, 여당 의원들도 윤 대통령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정권 출범 초기 한 국민의힘 의원은 "윤 정부의 성공을 바라지만 당과 대통령실 사이에 화학적 융합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선 10개월만에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7일 윤 대통령에 대한 나경원 전 의원의 사과를 요구한 초선 48인의 공동성명이 단적인 예다. 당일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에 유감을 표명한지 2시간되 채 되지 않아 초선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나 전 의원을 비판했다.

20년 가까이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일한 한 보좌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공개 비판한 적 있었지만 의원들이 단체로 옹호한 적은 없었다"며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 윤 대통령의 여당 장악력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넘어서고 있다"고 전했다.

與 의원들, 공천 의식 결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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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장악력을 나타낼 수 있는 비결로는 총선 공천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가장 크게 꼽힌다. 윤 대통령과 여당 현역 의원 대부분의 인연이 일천한만큼 내년 총선 공천에서 상당수가 배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서울 강남권과 영남 등 여당의 텃밭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공천을 받기 어려울 거라는 예측이 지난해부터 제기된다.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도 여기서는 자유롭지 않다. 상당수가 지역구를 내려놓고 험지 출마 요구를 윤 대통령측에서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모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공천을 확신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소속 출마를 감수한다는 생각으로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적 생명과 직결되는 공천을 위해 의원들이 윤 대통령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윤심을 벗어난 인사에 대한 공격은 때때로 가혹할 정도다. 이준석 전 대표는 당헌·당규를 바꾸면서 끌어내렸다. 나 전 의원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당, 여당 출신 광역지자체장까지 합심해 십자포화를 가했다.

'공포정치'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같은 사례들은 초선이 많은 현 국민의힘 내에서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 비중은 57%로 더불어민주당(49%)보다 높다. 공천 갈등과 2020년 총선 패배로 중진 의원들이 21대 국회에 발을 들이지 못한데 따른 결과다.

정치권 관계자는 "초선 의원들은 지역구 기반이 취약해 공천에 더욱 목을 맬 수 밖에 없다"며 "윤 대통령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윤심에서 어긋나지 않으려 노심초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