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광 기자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생전에 아이팟이나 아이폰 같은거
신제품 발표회를 하고 그러면
막 난리가 났잖아요.
사람들이 잡스에게 소리 지르고, 환호하고.


한국은 여기에 비하면
정말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재벌 총수라고 하면
왠지 근엄하거나,
청문회 같은데 불려 나가거나
혹은, '은둔의 경영자'라고 해서
공개된 장소에 일절 안 나오는.
이런게 일반적인 이미지 인데요.
그런데 이 분이 갑자기 딱
나타난 거에요.
대중들과 거침없이 소통하고.
인스타그램으로 요리하는 사진
같은 거도 올리고.
수 십만명이 팔로우 하고.
심지어 기업인으로는 다소
금기시 되는 정치적인 성향
이런 것도 과감하게 밝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입니다.
가십만 있는 게 아니라,
경영자로서 존재감도 상당했죠.
'쇼핑몰이라면 이정도는 해야지'
이렇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엄청나게 큰 스타필드를 짓고.
백화점, 마트 이런거 말고.
쿠팡 같은거 우리도 해보겠다.
하면서 이베이코리아 인수하고.
최근에는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겠다
이런 논리로, 야구단까지 인수했죠.
인수 1년 만에 정규 시리즈 1등까지 했어요.
이런 행보가 화제도 되고
주목도 받았는데,
문제는 경영 성과로
잘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죠.

이번 주제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선 지고 있는,
위기의 남자 정용진 입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막내 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아들입니다.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 백화점을 롯데, 현대와 함께
국내 3대 백화점으로 일궜고.
할인점을 국내 최초로 들여와서
2000년대 마트 전성 시대를 이끌었어요.
이마트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월마트, 까르뿌, 마크로 같은
글로벌 유통 공룡들이
이마트의 성공 이후에 줄줄이
한국으로 들어왔는데
당해내지 못하고 몇 년 만에
철수할 정도 였습니다.
지금의 쿠팡, 아니 그 이상으로
한국 유통의 간판 역할을 했습니다.
이명희 회장은 신세계 그룹을
재계 순위 10위까지
끌어 올린 경영자 이지만
일절 외부 활동을 하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이기도 했습니다.
외부 행사는 물론
임직원 앞에도
여간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정용진 부회장은 전혀 다르죠.
등장 부터 주목을 끌었습니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배우 고현정과 1995년 결혼 해서
2003년 이혼할 때 까지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또 부회장 직함을 2006년
39살의 나이에 달았는데,
부회장 되고 나선 신세계 그룹의
공식 행사에 거의 전부
정용진 부회장이 나갑니다.
어쨌든 정용진 부회장은
사람들 관심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즐기는 듯한 느낌도 들죠.
인스타그램을 즐겨 쓰는데.
여기에 요리하는 사진,
출장 갔던 사진,
반려동물 사진,
골프치는 사진,
심지어 아이들 사진까지.
사생활을 스스럼 없이 올려서
사람들이 재벌 총수의 삶을
살짝 엿볼수 있게 하는 기회라면 기회.
이런 것도 줍니다.
방송에도 깜작 등장해서
백종원이 못난이 감자 30톤을
사달라고 했더니 덥석 사줬고,
이후에 해남 왕고구마 450톤
이것도 사달라고 하자
또 사줘서.
착한 경영자 이미지도 쌓았어요.
그런데 경영자로 봤을 땐 어떤가.
물음표가 있습니다.
아직 진행형이라,
결과가 난 것은 아니지만.
중간 평가는, 그냥 그래요.
정용진 부회장의 실력을 보려면
이마트를 봐야 합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신세계 그룹
전체 부회장이기는 한데,
경영은 동생인
정유경 총괄사장과 분리해서
하고 있죠.
지분도 각각 쪼개서 갖고 있어요.
이마트는 정용진 부회장이.
백화점 사업 하는 신세계는
정유경 사장이 합니다.
그런데 이마트가 완전
죽을 쓰고 있죠.
올해 상반기 이마트는
영업이익 221억원을
기록했는데요.
작년 상반기 대비 1000억원 넘게
이익이 줄었습니다.
특히 2분만 떼어 놓고 보면
123억원의 적자를 냈어요.
매출이 7조원을 넘겼는데.
헛장사를 한 겁니다.
이마트가 예전에 얼마나 이익을 잘 냈냐면,
연간 8000억원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마트 산업이
이마트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봐도
지금은 쪼그라들어서
잘 되긴 어렵습니다.
요즘 사실 마트에 잘 안 가죠.
갈 이유가 점점 없어져요.
대형마트가 원래 할인점으로 불렸는데.
가격을 할인한다는 뜻이잖아요.
근데 대형마트 가격이 지금 싼가요?
별로 안 싸죠.
쿠팡, 네이버가 더 쌀 때가 많죠.
또 사실 저는 이게 더 큰데.
장 보러 가는 게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마트 가면 주차하고,
살 물건 찾으러 카트 끌고 다니고,
잔뜩 사서 차에 싣고.
집에 와서 사온거 정리하고.
이거 하는데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소모됩니다.
이런거 좋아하는 분도 있지만요.
근데 온라인으로 사면
문 앞에 박스만 들여 놓으면 되니까.
너무 편하죠.
정용진 부회장이 이런거 몰랐을 리 없고.
10여년 전부터 대비를 했습니다.
진짜 많은 시도를 했어요.
이마트 만으론 안 되니까.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이런거 다 들어가고.
여기에 장난감 전문점,
가전 전문점, 명품 전문점, 자동차 판매점.
이런거에다, 수영장에 골프장까지.
그냥 하루 온종일 사람들이 머물면서
돈 쓰게 하려고 초대형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를 열었죠.
2016년 하남을 시작으로
고양, 안성 등에 매장을 냈고.
인천 청라, 수원, 창원 등에서
현재 공사를 진행 중입니다.
쇼핑몰이 너무 커서
처음에는 어떻게 저걸 다 채우냐
그랬는데, 막상 가보면
빈 자리 없이 대부분 잘 돌아가고 있어요.
사람들도 많고.
이익도 잘 나고 있습니다.
또 자체 브랜드이자 전문점인
노브랜드도 괜찮아요.
이게 코카콜라, 신라면 이런
상품 브랜드를 빼버리고
이마트가 공장에 직접
주문을 해서 그냥 콜라, 그냥 라면
이런 식으로 브랜드 없이
싸게 판매를 하는 컨셉 인데요.
유럽이나 미국의 초저가 슈퍼인
알디, 리들이 노브랜드의 벤치마킹
대상인데. 꽤 잘 하고 있어요.
또 코스트코와 비슷한 형태의
트레이더스도 장사가 잘 돼죠.
물건을 대량으로 파는 대신에
가격을 더 낮췄습니다.
요즘같은 고물가 시대에
잘 맞는 컨셉이죠.
이마트는 파는 상품에도
큰변화를 줬어요.
와인이 대표적인데요.
술은 온라인으로 못사니까,
마트 가서 사야 하니까
와인을 미끼상품으로
활용 했습니다.
도스코파스란 이름의
병당 4900원 짜리
가성비 와인을 내놨죠.
한 번 주문할 때
100만병 막 이렇게
무식하게 많이 사서
단가를 낮 확 낮췄습니다.
이거 사러 이마트 오라고.
실제로 효과도 꽤 있었어요.
이렇게 정용진 부회장의
다양한 시도는
효과를 내는 듯 보였어요.
문제는 이게 소소한 성공에 불과한.
그러니까,
전체 유통 업계 판을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란 거예요.
개별 전투에선 승전보가 나는데,
전쟁이란 큰 판에선 지고 있는 거죠.
주가가 이걸 잘 말 해 줍니다.
이마트 주가는 하락 수준이 아니라,
절벽으로 떨어져서
사상 최저가를 연일 씁니다.
상품이 아니라 자기들 주식을
최저가에 팔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마트의 미래가
굉장히 불투명하다.
아니 사업 가치는 거의 없다.
이렇게 까지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마트 시가총액이 2조4000억원
가량 하는데,
사실 이마트 매장 10개만 팔아도
이 돈 다 구하고도 남습니다.
이마트 매장은 전국에 150개가 넘죠.
또 지마켓. 예전 이름은 이베이코리아.
이거 인수하느라 3조4000억원이나
썼는데. 지마켓이 원래
연간 수 백억원씩 이익을 내는 회사였거든요.
근데 올 상반기 실적 보니까,
영업적자가 370억원에 달했어요.
쓱닷컴이 660억 손실을 냈고.
합하면 적자가 1000억원이 넘죠.
연간으로 하면 2000억원 적자인데요.
쓱닷컴 경쟁자인 쿠팡이 원래 적자의
대명사인데. 쿠팡이 적자폭을
줄여가는 것과 다르게
이마트 온라인 부문은 적자폭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마트는 이 적자 메우려고,
살던 집까지 팔았죠.
서울 성수동 본사를
작년 말에 1조2000억원 받고
매각을 했습니다.
손실이 계속 나면
다른 부동산을 또 팔아야 할겁니다.
이걸 무한정 할 수는 없죠.
적자가 난다 하더라도,
온라인 잘 하고 있다
이런 평가를 받으면 괜찮은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온라인 경쟁에서 살아 남으려면
소비자가 확 느낄 만한
좋은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다는 거죠.
예컨대 쿠팡은 로켓배송이란
강력한 무기에
와우클럽이란 멤버십을 도입하고
쿠팡플레이란 동영상을 붙여주고
이렇게 계속 서비스를 강화해서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검색이란 강력한
수단이 있는 데다,
판매 수수료를 사실상 소비자에게
거의 다 쿠폰 형태로 주고 있어서.
최저가에 특화가 됐어요.
네이버는 쇼핑 수수료는
고객들에게 다 돌려주고
쇼핑 광고로 돈을 벌죠.
또 무신사 같은 회사들은
패션과 MZ 세대에 특화를 해서
소비자들을 팬으로 만드는 데
성공을 했습니다.
근데, 쓱닷컴, 지마켓은 뭐가 있는지
딱히 잘 안 보입니다.
3강 구도 안에 든 것을
그나마 위안 삼아야 할 거 같아요.
정용진 부회장은 그런데,
돔구장 짓겠다고 돈을 또 쓴다고 하죠.
그러면서 한편으론,
긴축 경영을 한다면서 물류창고를
통합하고. 앞뒤가 잘 안 맞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요.
뭔가 시도는 해야겠고.
그런데 돈은 잘 안 벌리고.
조바심이 나는 것일까요?
정용진 부회장이 줄기차게 밀고 있는
전문점도 노브랜드 빼곤
그냥 그래요.
가전제품 파는 일렉트로마트.
여기는 롯데하이마트에 밀려서
성과를 별로 못 내고 있고.
반려동물 용품점인
몰리스펫. 이건 그냥 정용진 부회장이
취미로 하는 느낌도 있죠.
편의점 이마트24는
CU GS25 세븐일레븐에 밀려서
존재감이 없습니다.
그나마 정용진 부회장의
최대 성과로 불리는
스타벅스가 잘 하고 있어서
위안을 삼고 있긴 합니다.
이마트는 한국 스타벅스의 지분
67.5%를 보유한 최대주주 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정용진 부회장이 잘 한 것도 있지만,
스타벅스니까. 이마트 브랜드가 아니죠.
그러니까 경영 성과로 내세우기에는
조금 민망하긴 합니다.
거기에 이마트가 최근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고 나서
커피의 맛이 변했다는 말도 나오고,
또 사은품으로 준 캐리백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기도 하고.
말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좀 아이러니 한 게
백화점 사업을 맡고 있는
동생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은
새로운 것을 거의 하지도 않았는데,
사업이 잘 되고 있다는 겁니다.
신세계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약 350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60%나 늘었어요.
신세계는 백화점과 해외 브랜드, 화장품
면세점 사업을 하는데요.
소비가 양극화 되면서 명품이 잘 되고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사람들이 백화점에 나오면서
장사가 잘 된 겁니다.
조만간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면세점도 잘 되겠죠.
지금은 이마트 보다 신세계가
알짜 회사로 꼽힙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샷은
100퍼센트 빗나간다'
북미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의 말을 인용한 건데요.
그러니까 나는 너네가 뭐라 하든
이거저거 앞으로도 계속
시도를 할거다
이런 말로도 들립니다.
제 개인적으론,
조금 논란이 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는
정용진 부회장 같은
대기업 총수가 한국에 더 많으면
좋겠는데요.
그럴려면 정용진 부회장이
성과도 잘 내야겠죠.
정용진 부회장과 이마트,
새로운 시도가 통하는 날까지
눈여겨 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이하진·박정호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