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함께 개발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타깃 알츠하이머 항체치료 후보물질 레카네맙이 임상 3상 시험에서 인지장애 지연 효과를 입증했다. 뇌 속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이라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에 대한 부정적 평가까지 바꿀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오젠은 27일(현지시간)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한 레카네맙의 대규모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바이오젠과 에자이는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에서 레카네맙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했다. 치료 18개월차 환자들의 인지 기능 평가 지수(CDR-SB)가 위약군 대비 얼마나 나아지는지를 1차 평가 지표로 삼았다. 이날 바이오젠은 레카네맙 치료를 받은 환자의 27%에게서 임상 증상이 개선됐다고 밝혔다. 레카네맙이 치매 환자의 인지 감퇴 속도를 27% 정도 늦췄다는 의미다.

뇌 속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양전자 단층촬영(PET)으로 확인하는 영상검사 등 2차 지표에서도 레카네맙 투여 환자군은 대조군보다 개선 효과를 보였다. 레카네맙을 투여한 환자에게선 뇌부종 등 부작용이 좀 더 많이 확인됐다. 레카네맙 투여군의 21.3%가 뇌 부종 등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이상(ARIA)을 호소했다. 가짜약 투여 환자군에게 ARIA가 생긴 비율은 9.3%였다.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 입증?…바이오젠, 레카네맙 3상서 1차지표 충족
20여년 간 많은 제약사와 연구진이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 입증에 도전했지만 완전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최근엔 2006년 네이처에 발표된 미국 미네소타대의 알츠하이머 연구 결과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레카네맙은 뇌 속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뭉치는 것을 막는 단일클론항체치료제다. 이번 연구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입증하는 연구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레카네맙이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입증한 첫 치료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이유다.

앞서 출시한 항-아밀로이드 베타 치료제 아두헬름의 제한적 사용 탓에 사면초가에 놓인 바이오젠이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레카네맙의 조건부 시판 승인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내년 1월6일께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에자이는 이번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여름께 정식 허가를 받아 미국 보험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미국 전문가들은 레카네맙에 대한 평가를 유보했다. 11월께 CTAD 2022(Clinical Trials on Alzheimer's Disease) 등을 통해 정식 데이터가 공개되면 이를 본 뒤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론 슈나이더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통계적으로 긍정적인 결과지만 치료 효과 면에선 크지 않다"고 했다.

레카네맙의 1차 평가 지표로 삼은 CDR-SB 점수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미국 의학전문지 스탯은 분석했다. 통상 CDR-SB 점수는 인지영역을 6개로 나눈뒤 0~18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점수가 높을수록 심각한 치매다.

18개월 간 매달 두번 레카네맙의 정맥주사를 받은 환자들의 이 점수는 가짜약 투여군보다 0.45점 낮았다.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수치다. 앞서 아두헬름은 이 수치를 0.39점까지 낮췄지만 두번째 연구에선 이를 충족하는 데 실패했다.

문제는 이렇게 점수가 개선돼도 환자 삶에는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수치가 1점에서 1.5점으로 올라가면 스스로 운전할 수 없게 되는 등 변화가 크다. 하지만 14점에서 14.5점으로 올라가는 것은 중증 치매 환자에겐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레카네맙 투여군에서 뇌부종 등 부작용 발생 환자가 비교적 많은 탓에 통계적 오류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마이클 그레시우스 스탠포드대 교수는 "환자에게 ARIA가 있으면 가짜약이 아닌 진짜약을 투여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연구 편향이 생길 수 있다"며 "진짜 약효를 확인하려면 ARIA가 없었던 환자군만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레카네맙을 시작으로 알츠하이머 관련 주요 연구가 연이어 발표될 전망이다. 로슈도 CTAD 2022에서 간테네루맙 데이터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라이릴리는 내년 상반기 도나네맙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