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칼럼] '헬리콥터 복지'가 초래한 비극들
극단적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는 매달 125만원의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빈곤층 사회안전망의 핵심인 기초생활보장제에 의거해서다. 무지 혹은 은둔 탓에 복지체계에서 누락되고 말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설이다. 해법도 ‘찾아가는 복지’로 집중되는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각지대 해소’를 강조했고, 보건복지부가 ‘빅데이터 기반 발굴시스템’ 구축에 착수했다.

하지만 ‘발굴 실패’는 일면의 진실에 불과하다. 8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찾아가는 복지를 강화해 이제 읍·면·동의 복지전문공무원만 3만 명을 웃돈다. 그런데도 관악구 탈북 모자, 성북구 네 모녀, 방배동 모자, 창신동 모자 등 판박이 비극은 끝이 없다.

왜일까. 발굴 실패보다 더 치명적인 ‘재원 부족’ 문제를 외면한 탓이다. 네 모녀·세 모녀·모자 비극의 당사자들은 세상을 등지기 전 대부분 국가에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다. 언제나 ‘거절’이라는 답변이 돌아오자 누적된 좌절감에 삶의 끈을 놓고 말았다.

주민센터 공무원들이 냉혈한이라서 거절한 게 아니다. 한정된 재원 탓에 지원 대상자 선정에 겹겹 제한을 두고 있어서다. ‘서류상 이혼 안된 남편이 존재해서’ ‘연락 끊긴 성인 자녀가 있어서’ 등 거절 사유만 오만 가지다. ‘생계급여’ 예산이래야 연 4조6000억원에 불과하다. 15% 선인 빈곤층(국민 중간소득의 50% 이하)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세 모녀 사건을 접한 윤 대통령은 ‘정치복지에서 약자 복지로의 전환’을 외쳤다. 유한한 재원을 감안할 때 정확한 판단이다. 문제는 말과 행동이 정반대라는 점이다. ‘돈 먹는 하마’가 된 기초연금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좌파 정부 못지않게 포퓰리즘이 넘친다.

기초연금은 2008년 도입 당시 하위 35% 저소득 노인을 대상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나쁜 정치의 개입으로 지급 대상은 금세 70%까지 치솟아 올해 투입 예산만 21조원이다. 설계대로 35%에게만 지급할 경우 절반인 10조5000억원이 절감된다. 이를 ‘세 모녀’ 지원에 투입하면 돈 걱정 없이 생계급여 지급액과 지급 대상을 3배 이상으로 키울 수 있다.

사실상의 노인 보편복지가 돼버린 기초연금은 ‘국고 도둑’이다. OECD가 ‘취약 노인에게만 지급하라’고 10여 년 전부터 권고할 정도다. 그런데도 윤 정부는 월 30만원인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순차 인상하는 내용의 내년 예산을 짰다. 계획대로라면 기초연금 예산만 2030년 50조원, 2040년 100조원으로 감당불가 지경이 된다.

‘부모 급여’라는 이름의 새 보편복지도 만들었다. 월 30만원인 영아(만 0~1세) 수당에 보태 영아 부모에게도 최대 월 100만원씩 주는 내용이다. 군인까지 퍼주기 대상이 됐다. 82만원(병장)인 월급을 ‘3년 내 200만원으로 만들겠다’며 내년 급여를 한방에 59%나 올렸다.

무차별 ‘헬리콥터 복지’를 남발하다 생고생한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1950년대 유럽 1위였던 스웨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0년대에 14위까지 밀렸다. 정확히 보편적 복지로 매진한 1950년대부터 나타난 침체였다. 결국 보편복지에서 선별복지로 갈아타는 대대적 작업을 1994년부터 시작했다. 모든 노인에게 주던 기초연금을 저소득 노인 지급으로 바꾼 게 대표적이다. 보편 복지에서 벗어나자 스웨덴 경제는 바로 회복세로 돌아서는 또 한 번의 반전을 보였다.

‘수원 세 모녀’ 스토리에 먹먹해진 한 대학생은 “코로나 지원금 10만원 받은 게 죄스럽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으로 나눠 가진 돈만 26조원이다. 하위 50%에만 줬다면 13조원을 아낄 수 있었다. 저소득층 생계급여 1년 예산의 세 배에 육박하는 거금이다.

송파·수원 세 모녀 모두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랏돈으로 소고기 사 먹으며 즐거워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복지를 빙자한 현금 살포꾼들에 단호히 저항하는 것이 악전고투 중인 세 모녀들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