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5대개혁 한다더니 첫단추부터 꼬이나
“이렇게 불필요한 논란이 야기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SNS에서 주 52시간제 개편과 관련한 대통령실과 정부 간 혼선과 관련해 이같이 밝혔다. 윤 전 의원은 “노동개혁은 저성장 구조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주 52시간제는 전체 노동개혁 과제 중 극히 작은 조각일 뿐인데 정부가 매를 벌었다”고 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3일 1주일에 최대 52시간으로 제한한 근로시간 기준을 주 단위에서 월평균으로 바꾸는 주 52시간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후 하루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보고를 못 받았다.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다”고 밝히면서 혼란이 일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이번 사태의 배경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통령실은 “(노동담당)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최종안이라고 보고는 안 했다. 그래서 보고를 못 받았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공공연금·노동시장·교육·금융·서비스 등 5대 부문의 구조개혁 방침을 내놨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후 이정식 장관도 참석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개혁을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고, 이에 이 장관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주 52시간제 개편을 발표했다. 정부가 제대로 된 내부 의사소통도 없이 첫 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했다고 자백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대통령실이 노동계와의 갈등을 꺼려 한 발 물러섰다는 분석까지 제기한다. 대통령실은 “절대 아니다”며 펄쩍 뛰지만, 이달 초 화물연대 파업에서 줄곧 노동계에 끌려다닌 국토교통부가 연상된다는 ‘깊은 한숨’도 들린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정부는 체면을 심하게 구겼다. 노사관계·노조법 개정 등 추가 노동개혁 과제에 대해선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황에서 논란만 일으킨 꼴이 됐다. 전체 5대 구조개혁 추진 과정을 재점검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 분야는 민감한 노사 간 대립 구도를 전제로 하는 정치 영역에 가깝다.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저성과자 해고 제도 △임금피크제 도입 절차 완화 등 ‘양대 지침’은 노동계 반발 등에 부딪혀 좌초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친노동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 분야에 칼을 대야 하는 책무까지 지게 됐다.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일관된 철학과 신중한 전략이 없는 구조개혁은 매를 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