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홀스빗 1955' 가방을 착용한 아이유. /아이유 인스타그램
'구찌 홀스빗 1955' 가방을 착용한 아이유. /아이유 인스타그램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는 이달 핸드백 주요 제품 가격을 10% 가량 인상했다. 지난 2월 가격을 올린 지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또 인상한 것이다. 가수 아이유가 착용해 인기를 끈 ‘홀스빗 1995 미니백’도 올 들어 두 번이나 올랐다. 올 초 315만원에서 340만원으로, 또 370만원으로 17.4%(55만원)나 인상된 셈이다.

최근 들어 정부까지 나서 물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수입 명품 브랜드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명품업체들은 몇 달 걸러 잇달아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인상률도 큰 데 올렸다 하면 기본이 두 자릿수다. 업체들은 “원자재 값과 물류비, 인건비가 뛰어 가격을 올렸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들은 그러나 “원자재 값이 매달 두자릿 수로 오르는 것이냐”며 “명품 업체들이 코로나19의 핑계를 대며 갈수록 더 자주, 더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은 다음달 5일부터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다. 앞서 디올은 올해 1월 레이디백·카로백·북도트 등의 가격을 최대 20% 가량 인상한 바 있다. 레이디 디올 미디엄 백은 650만원에서 760만원으로 16.7% 올랐다. 이번에 또 인상을 하면 레이디백은 800만원대에 육박하게 된다. 디올은 매년 한 두 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해왔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인상 주기가 4~5개월로 점점 짧아지고 있다.
레이디 디올 까나쥬 백. /한경DB
레이디 디올 까나쥬 백. /한경DB
인기 명품 샤넬은 코로나19 국내에서 총 아홉 차례나 가격을 인상했다. 이르면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국내 명품 커뮤니티들에선 샤넬이 클래식 라인 등 인기 핸드백 가격을 10% 가량 올릴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코로나19 직전인 3년 전만 하더라도 샤넬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 사이즈는 715만원이면 살 수 있었지만 현재는 1180만원을 줘야 살 수 있다. 하반기 인상이 이뤄지면 더 많은 값을 치러야 한다.

업체들은 원자재 값이나 환율 등을 반영한 가격 조정이라는 입장이다. 필리프 블론디오 샤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로화 약세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달 중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소비자들은 그러나 환율이나 원자재·물류 비용에 따른 인상이라고 보기엔 가격 인상이 지나치게 잦고 인상 폭이 크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회원 수 60만명의 한 명품 커뮤니티엔 “물가가 오른 점은 인정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인상이 너무 잦아 황당하다”는 식의 글이 여러건 올라왔다.

지난달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는 글로벌 우리나라 명품 시장 규모는 2012년 83억4800만달러(11조원)에서 올해 169억6100만달러(22조원)로 2배 늘어난 것으로 추산했다. 본래 명품 주요 소비자인 40~50대를 넘어 최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인 20~30대까지 시장이 확장한 결과다.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다. /뉴스1
소비자들의 비판에 직면했지만 명품 브랜드들이 아랑곳 않고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것은 견고한 수요가 있다는 판단을 해서다. 인상설이 나올 때 마다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 제품을 구매하는 소위 ‘오픈런’ 현상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샤넬이 제품 가격을 올린다는 소문이 돌자, 이달 각 백화점 매장엔 제품을 사려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오픈런 행렬에는 재판매 업자(리셀러)는 물론이고 본인이 제품을 쓰려는 실수요자도 대거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폭우가 쏟아지던 전날에도 새벽부터 빗 속에서 줄을 선 이들이 많았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도 “무차별적으로 가격을 인상해도 줄을 서서 사주니 한국 소비자가 호구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가격 유지를 위해 공급을 거의 늘리지 않는데 수요는 자꾸 커지는 모양새”라며 “결국 가격을 높일 때마다 수요가 더 몰리는 국내시장 분위기 탓에 본사들이 가격 인상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