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이 머물며 휴식, 자연·문화 체험하는 마을여행
워케이션 명소 된 세화 "외국 휴양지서 일하는 느낌"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탈 여행'이 아닌 일상으로 되돌아올 힘을 얻기 위한 '재충전 여행'.
제주의 마을을 탐하다…자연과 사람이 빛나는 '세화'
'관광 일번지' 제주가 최근 추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여행이다.

제주의 마을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어 다니며, 다정한 사람을 만나고, 건강한 한 끼 식사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재충전 여행.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첫선을 보인 제주 마을여행 통합브랜드 '카름스테이'(KaReum Stay) 거점 마을 중 세화마을을 지난 14일 찾았다.

카름스테이는 제주의 작은마을, 동네를 뜻하는 제주어 '가름'(카름)과 머묾을 의미하는 '스테이'를 결합한 단어다.

◇ 질그랭이 머무는 구좌 속 세화
제주 동쪽 끝자락에 바다와 오름을 끼고 자리 잡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제주의 마을을 탐하다…자연과 사람이 빛나는 '세화'
닷새마다 열리는 세화 민속오일시장 옆에 현대식 건물의 멋진 '질그랭이 거점센터'가 문을 열었다.

원래 폐건물과 다름없던 세화마을 소유의 종합복지타운 건물이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을 거쳐 관광객과 마을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세련된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결혼식 피로연을 하던 1층 공간이 관광객을 유치하는 질그랭이 구좌주민여행사와 세화리사무소로 탈바꿈했다.

또 2층 예식장이던 공간에는 구좌읍의 명물 당근을 활용한 당근주스와 당근케이크·감자빵·지역농산물·친환경 용품을 판매하는 카페가, 3층에는 공유오피스가, 4층에는 숙박시설이 들어섰다.

센터의 이름인 '질그랭이'는 '지긋이'라는 뜻의 제주어다.

제주의 마을을 탐하다…자연과 사람이 빛나는 '세화'
지역주민에게는 일상 공간으로써 함께 쉬고 누리며 채우는 중심 거점으로, 방문객들에게는 편하게 머물며 다시 찾아오고 싶은 지역 명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민들이 만든 지역 마을 브랜드다.

'질그랭이 구좌'.
세화리 뿐만 아니라 구좌읍에 사는 여러 주민의 손글씨가 그대로 브랜드 아이덴티티(BI)가 됐다.

둥글둥글하고 정겨운 주민들의 모습과 꾸밈없는 자연의 마음이 엿보인다.

주민들의 손글씨에는 구좌읍을 대표하는 5가지 자연의 색이 담겼다.

구좌읍의 대표 농산물인 당근을 상징하는 주황색, 제주 바다의 파란색, 오름을 대표하는 녹색, 갈대와 나무의 색인 황토색, 돌담과 해녀 잠수복의 검은색 등이다.

건물 외벽에 쓰인 '질그랭이 머무는 구좌 그 속에 세화'라는 글귀처럼 세화는 자신이 속한 구좌읍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관광객이 지긋이 머무는 구좌 속에서 세화는 자연과 사람으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제주의 마을을 탐하다…자연과 사람이 빛나는 '세화'
◇ 마을관광·워케이션 명소로 거듭
질그랭이 거점센터는 이웃과 더불어 살던 옛 마을의 모습을 되살리고자 조직한 '세화마을협동조합'의 활동 거점이다.

'옆집 일도 내 집 일처럼 여기고, 옆집 숟가락과 젓가락 개수까지 알면서 한 가족 같이 살던 시절. 사람 냄새 물씬 풍기고 정이 넘치던 어릴 적 우리 동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청장년층의 이탈과 고령화, 이주민 유입 등으로 마을 공동체 의식과 결속력이 날로 약화하는 상황에서 고민 끝에 탄생한 협동조합이다.

현재 당근 농부, 물질하는 해녀 등 세화마을 주민 492명이 가입돼 있다.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고, 여행자에게 세화마을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기 위해 주민 모두가 함께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질그랭이 거점센터를 운영하는 셈이다.

관광객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가 됐다.

관광객은 여행 가방을 끌고 센터를 찾기만 하면 된다.

제주의 마을을 탐하다…자연과 사람이 빛나는 '세화'
카페와 숙소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질그랭이 구좌주민여행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마을 여행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해녀 삼춘(이웃 남녀 어른을 친근하게 부르는 제주어)이 직접 소개하는 해녀의 삶과 문화 이야기를 듣고, 해녀 삼춘이 잡은 성게와 문어, 뿔소라로 해물라면을 만들어 먹어볼 수도 있다.

세화리의 랜드마크인 다랑쉬 오름에 가서 숲 다도 체험과 요가, 명상 등 웰니스 프로그램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다.

가족·친구·연인과 함께든 홀로 여행을 오든 누구나 편하게 모든 체험을 즐기면 된다.

여행지와 인근 식당, 카페, 전시실 등에서 스탬프를 모으면 선물도 받을 수 있는 스탬프 투어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세화는 최근 들어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워케이션'(workation) 공간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합쳐 만든 합성어다.

산과 해변 등 휴가지에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근무·여행 방식을 의미한다.

지난해 10월 질그랭이 거점센터 3층에 공유오피스가 생겨나면서부터다.

제주의 마을을 탐하다…자연과 사람이 빛나는 '세화'
카페로 활용하려 했지만, 코로나19 기간 재택근무와 워케이션이 일반화하면서 오피스를 찾아 전전긍긍하던 청년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지성 세화리장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재탄생한 공간을 청년을 위해 환원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3층 공간을 공유 오피스로 만들고 현재는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누구나 3층 공간에서 쉬면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 주목받지 못했던 이 공간은 지난달부터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도입한 10개 기업의 직장인들이 찾으며 활기를 띠고 있다.

IT기업에서 일하는 정성훈(34) 씨는 4박 5일 일정으로 세화 질그랭이 거점센터를 찾았다.

정씨는 "요즘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잖아요.

한 번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됐다"며 "일하다가 창밖을 보니 바다가 보여 리프레시도 되고, 쉴 때는 스탬프 투어도 하면서 마치 관광 온 듯한 느낌도 나 직간접적으로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프리미엄 제주 먹거리를 판매하는 진정은(37·여) 씨는 "정해진 마땅한 사무실이 없는 사람들에게 공유 오피스가 매우 큰 도움이 된다"며 "특히 제주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외국을 나가기 쉽지 않은 사람들에게 휴양지에서 일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장소"라고 말했다.

제주의 마을을 탐하다…자연과 사람이 빛나는 '세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