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주시해온 주가의 항복(capitulation)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주식 채권 암호화폐 금 등 대다수 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S&P500지수는 공식 약세장에 진입했습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서 S&P500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3.88% 밀린 3,749.63, 나스닥지수는 4.68% 급락한 10,809.23, 다우지수는 2.79% 떨어진 30,516.74로 각각 거래를 마쳤습니다.

S&P500지수는 지난 1월 초 기록한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하며 기술적 약세장에 공식적으로 진입했습니다. 이날 종가는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다른 위험 자산도 동반 추락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개당 2만3000달러, 이더리움 가격은 1200달러 밑으로 각각 떨어졌습니다. 비트코인 시가총액은 작년 2월 이후 처음으로 1조달러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가장 큰 건 역시 물가 우려였습니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8.6%(작년 동기 대비)로, 정점 기대를 무색케 했을 뿐만 아니라 되레 41년만의 최고치를 찍었던 게 부정적 영향을 줬습니다.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선 암호화폐가 급락세를 보이면서 관련 종목도 일제히 떨어졌다. UBS 및 블룸버그 제공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에선 암호화폐가 급락세를 보이면서 관련 종목도 일제히 떨어졌다. UBS 및 블룸버그 제공
이 때문에 미 중앙은행(Fed)이 15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75bp(0.75%포인트) 올릴 것이란 관측이 갑자기 부상했습니다. 워낙 가파르게 뛴 물가를 잡을 방법은 충격적인 금리 인상밖에 없다는 겁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Fed 출입기자가 이날 폐장 40분 전 ‘금주 75bp 인상 가능성’을 제기하자 주요 지수가 급격히 추가 하락했습니다.

Fed가 빅스텝(50bp 인상)을 넘어 자이언트스텝(75bp 이상 인상)을 밟으면, 1994년 이후 처음이 됩니다.

월가에선 Fed의 최종 기준금리가 내년 중반쯤 연 4%에 도달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종전 예측 대비 0.5%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이밖에 △제롬 파월 Fed 의장의 고강도 발언 가능성 △일제히 급등한 장·단기 국채 금리 △같은 위험자산인 암호화폐 가격 급락 등이 증시에 영향을 줬습니다.

월가에선 종전보다 더 센 긴축과 경기 침체 예측이 크게 늘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새 보고서를 통해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과 주가수익비율(PER)이 동반 하락할 경우 S&P500지수가 최대 3150까지 밀릴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올해 침체가 확정될 경우 S&P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은 평균 225달러로 낮아지고 주가수익비율(PER)은 14배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S&P500지수는 3150까지 밀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올해 침체가 확정될 경우 S&P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은 평균 225달러로 낮아지고 주가수익비율(PER)은 14배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S&P500지수는 3150까지 밀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는 “침체 확률을 종전까지 30%만 책정했는데 50%로 높여 잡았다”며 “다만 심각하고 긴 침체가 올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습니다.

로저 퍼거슨 전 Fed 부의장은 “인플레이션이 지난달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하기엔 지나치게 이르다”며 “파월 의장은 금주 정례회의에서 75bp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미 인플레이션이 더 뛰면서 9%에 달할 수도 있다”며 “물가가 더 상승한 뒤 침체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로버트 덴트 노무라 선임이코노미스트는 “터널의 끝에 있던 빛이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기차였다”며 “내년에 가까스로 침체를 피하더라도 미 성장률은 0.6%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투자은행 RBC의 로리 칼바시나 미국주식전략 책임자는 “경기 침체 땐 S&P500지수가 고점 대비 32% 떨어지는 게 역사적 평균”이라며 “침체기에 S&P지수는 평균 381일동안 약세를 지속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뉴욕증시가 1930년대 이후 총 13번의 침체기를 겪었는데, 이 기간 중 S&P지수의 평균 하락률은 32%에 달했다는 겁니다. 중간값 기준으로도 27% 밀린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투자은행 RBC는 13일(현지시간) "침체 땐 S&P500지수가 평균 32% 하락했다"고 밝혔다. RBC 및 CNBC 제공
투자은행 RBC는 13일(현지시간) "침체 땐 S&P500지수가 평균 32% 하락했다"고 밝혔다. RBC 및 CNBC 제공
다만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증시의 주요 지수가 지금보다 5%, 10% 더 떨어질 수 있지만 결국 오를 것”이라며 “지금 투자를 시작하면 1년 뒤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고 낙관론을 폈습니다.

채권 금리는 급등했습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3.43%로, 전 거래일보다 28bp 상승했습니다. 통화 정책 변화를 잘 반영하는 2년물 금리는 연 3.40%로, 34bp나 뛰었습니다. 2007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장·단기 국채 금리는 장중 재역전되기도 했습니다.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졌던 탓입니다.

국제 유가는 또 뛰었습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6센트 상승한 배럴당 120.93달러에 장을 마쳤습니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 역시 26센트 오른 배럴당 122.27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산유국인 리비아의 정정 불안으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졌습니다. 리비아의 하루 생산량은 작년 기준 120만 배럴이었는데, 현재 10만 배럴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다만 중국의 수요 둔화 전망이 나오면서 급등세를 막았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선 클럽발 집단 감염 확진자 수가 늘면서 코로나19 봉쇄 강화 우려가 있었습니다.

IHS마킷의 댄 예르긴 부회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면, 사우디가 증산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미국의 지난달 인플레이션은 41년만의 최고치인 8.6%(전년 동기 대비) 급등했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미국의 지난달 인플레이션은 41년만의 최고치인 8.6%(전년 동기 대비) 급등했다. 미 노동부 및 트레이딩이코노믹스 제공
이날의 ‘글로벌마켓나우’ 이슈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터널 끝 빛은 맞은편 기차였다” ② S&P지수, 공식 약세장 ③ “침체 땐 1년 넘게 32% 급락” ④ SARK, 올해만 100% 수익 ⑤ 전기차 스타트업 파산 등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경 글로벌마켓 유튜브 및 한경닷컴 방송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