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3일, 헌법재판소는 종합부동산세 관련 위헌소송 중 세대별 합산과세 규정에는 위헌결정을, 1주택 장기보유자 과세규정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나머지 쟁점이 되었던 거주이전의 자유 침해, 미실현 이득에 대한 과세, 이중 과세, 자치재정권 침해 및 입법권 남용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일부 조항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렸다지만 종합부동산세의 핵심이었던 두 쟁점에 대해 위헌과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림으로써 종합부동산세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될 위기에 봉착했다. 이미 그간의 대책을 통해 종합부동산세의 과표적용률이나 세부담상한, 세율 등이 완화된데다 이번 위헌소송의 가장 큰 핵심 쟁점이었던 세대별 합산과세가 위헌결정이 남으로써 종부세 부과 대상이 극히 일부에 국한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강부자를 위한 대책, 부자정당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함인지 여당에서 종부세 과세기준금액을 현행대로 6억원으로 유지하되 부부동거 1주택자에 대해서는 3억원의 기초 공제를 적용해 사실상 9억원을 과세기준으로 적용하는 방안까지 마련해놓고 있는 상태다. 서민들을 위한 대책은 온데 간데 없거나 있어도 만만디인 반면 집부자를 위한 대책에는 왜 그렇게 신속하고도 친절한지 .., 그것도 모자라 여당 일각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예 종부세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종부세가 그렇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난도질을 당할 정도로 존재가치가 없을까? 존재가치가 있다면 어떤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까?
부동산규제의 핵심적인 상징성을 갖는다.
종부세는 헌법만큼 고치기 힘든 정책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탄생한 참여정부의 역작(?)이다. 당시 강남권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이틀이 멀다하고 폭등하자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2003년 5.23대책 때 처음 거론된 후 2005년 1월에 종부세법이 시행되었다. 이후 2005년 10.29대책에서 인별 합산과세를 세대별 합산과세로 전환키로 함으로써 법 개정을 통해 같은 해 12월 31일부터 세대별 합산과세 체제로 바뀌게 됐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종부세가 시행됐어도 한번 날개를 달기 시작한 집값 폭등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는 종부세제가 부동산규제책으로서 전혀 효과가 없었다라고 하기 보다는 각종 개발호재를 안고 상승하기 시작한 집값 상승분이 워낙 컸던 탓에 종부세 부담이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고, 또한 종부세는 보유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액이 커지는 구조라는 점도 시행 이후 당장의 규제 효과를 볼 수 없었던 원인이 됐다.
최근 종부세 문제가 위헌소송까지 제기될 정도로 이슈화 됐다는 것은 그만큼 종부세가 고가주택 보유자나 다주택 보유자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주고 있는 셈이다. 누가 뭐라든 종부세제는 참여정부시절 부활한 분양가상한제와 더불어 이미 부동산규제의 상징적인 의미가 되었다. 또한 서민들의 주택마련 기회를 넓히고 동시에 서민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최소한의 위안거리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제도의 실효성을 떠나 단지 상징성만을 가지고 또는 서민들의 위안거리라는 요소만 가지고 그 존재 이유를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종부세는 부동산규제라는 명분외에도 다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의지를 희석시킴으로써 집 없는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그 존재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종부세는 주택만의 문제가 아니라 토지 및 사업용 부동산에도 적용되는 제도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해 부과된 종부세 2조8560억원 중 토지 및 사업용 부동산에 부과된 종부세가 1조6144억원으로 주택분 종부세 1조2416억원보다 많았다. 이런 점에서 종부세는 주택외 다른 부동산에 대한 투기억제를 위한 규제수단으로서도 유효하다.
집값 안정, 종부세도 한 몫 거들고 있다.
집값 안정은 우선적으로 매물의 증가를 전제로 한다. 매물은 경제적 요인에 따라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면도 있고, 정책적 요인에 따라 인위적으로 매물 증가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의 매물증가는 금리부담, 거래위축 등의 요인에 기한 자연적인 매물증가와 종부세라는 세제부담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종부세 부담보다는 경제적 요인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MB정부 들어 종부세에 대한 완화 내지 폐지에 대한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보내왔고, 또한 그간의 집값 상승분이 종부세에 대한 체감을 어느 정도 완화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종부세 부담으로 인한 매물이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게다가 최근 세대별 합산과세에 대한 위헌결정과 1세대 장기보유자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으로 종부세에 대한 부담이 급감했고, 더군다나 기존에 부과된 종부세 초과분에 대해 환급까지 해주는 상황이 됐다. 고가주택 또는 다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의지는 더욱 강해질 것이고 앞으로 더 매물이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일이다. 수요에 비해 매물(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지사. 불행 중 다행으로 집값 상승 여지를 대내외적인 금융위기가 막아주고 있는 셈이다.
주택 보급률이 아무리 90%를 넘어서고, 100%를 초과한들 무슨 소용이랴! 주택을 다수 보유하는데 있어 아무런 부담이 없음으로 인해 다주택 보유자들만 늘어난다면 일반거래시장은 더욱 위축되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거래시장에서의 정상적인 매물 증가는 분양시장에서의 주택공급량 증대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경제가 회복된 후 부동산시장이 활황기에 접어들었을 때에도 시장에 매물이 적정량 흐르게 함으로써 집값 안정에도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그런 단초가 종부세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종부세액 감소, 결국은 서민부담으로 귀결될 터!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가 발간한 ‘종부세 감소가 지자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종부세가 무력화(과세기준이 6억원 초과주택에서 9억원 초과주택을 상향, 세율인하 등으로)될 경우 재정자립도가 낮은 기초지자체에 배분되는 부동산 교부세인 균형재정배분금의 거의 대부분이 삭감될 것이라고 한다.
2007년 기준 기초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50%를 넘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 두 곳에 불과하다. 더불어 서울과 경기, 충남, 경남 등 네 곳을 제외한 전국 11개 광역 시도의 자치단체는 자주재원(지방세 수입+세외 수입)의 10% 이상을 부동산 교부세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광주와 부산은 자주재원의 각 28.2%, 25.8%를 부동산 교부세로 충당하고 있다.
지난해 기초지자체에 배분된 부동산 교부세 총액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종부세가 지방을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이러한 교부세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들 지방재정을 상당히 열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당초 종부세 무력화 정도에서 한발 후퇴하여 종부세 과세대상을 현행대로 6억원 초과주택으로 유지하기로 하여 교부세 감소액이 예상보다 다소 줄어들 수는 있으나 1세대 장기보유자에 대한 세제개편이 내년말까지 있을 예정이고 또한 부부동거 1주택자의 경우 사실상 9억원 초과주택에 대해서만 종부세를 부과하는 안이 확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라 별반 차이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종부세 개편안이 확정되면 당장 올해와 내년 1조5000억원의 지방재정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감소액은 어디서 충당하게 될까? 당초 정부와 여당은 종부세를 완화하는 대신 재산세 과표 적용률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재산세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 뚜렷한 대안이 없는 마당에 소득세나 재산세 인상을 통해서나 현재 추진중인 재정보전교부금(가칭, 4조8000억 규모)을 신설하여 메우든 그 어떤 것이나 서민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입법이 정당하다면 정책 역시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물론 종부세가 유명무실해진 마당에 종부세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엄연히 종부세법 제1조는 ‘고액의 부동산 보유자에 대하여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여 부동산보유에 대한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하고, 부동산의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지방재정의 균형발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비록 이번 위헌소송에서 종부세 관련 두 가지 주요 쟁점에 대해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결정이 내려졌지만, 종부세법 제1조의 입법목적 등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이 내려진 만큼 종부세를 무력화하거나 폐지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입법이나 입법목적이 정당하다면 그 법이 사회에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역할이고, 정책 역시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개진되는 것이 옳다고 할 것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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