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보증금반환을 위한 임차인의 건물인도의무 이행제공에 얽힌 사례”라는 제목으로 2020. 4. 30.자 칼럼으로 소개된 재판의 판결이 최근 선고되어 소개한다. 기대했던대로 1심판결을 파기한 의뢰인 원고의 승소판결이었다. 판결 소개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예전 칼럼의 일부를 먼저 소개한다.



임대차만기에 이사를 가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임대인에게 이사를 가겠다고 통보하면서, 이사 들어갈 집을 임대차계약 하는 등 모든 준비를 했지만, 막상 이사 당일 기존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서, 이사 들어갈 집 임대차계약의 계약금 3천만원까지 몰취당한 의뢰인의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은 것은 1심 판결이 선고된 직후였다. 다른 변호사를 통해 1심 재판을 진행했는데, 가장 중요한 쟁점인 몰수당하여 손해 입은 3천만원에 대한 청구가 기각되고 말았다(임대차목적물 내 발생한 곰팡이로 인한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도 패소했지만, 이 부분은 원래부터 승소가 쉽지 않은 부분이라 논의에서 제외한다).


의뢰인의 주장대로라면 3천만원 손해배상청구에서 승소해야 마땅했다. 계약만기에 이사 간다는 사실을 사전에 임대인에게 충분히 고지했고, 이사가 예정된 당일에는 이사 업체를 통해 이삿짐을 꾸려 다세대 건물 1층 주차장까지 이동했음에도 임대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3천만원을 손해 봤다는 점에서, 상대방의 계약위반, 손해발생의 인과관계 면에서 능히 승소가 가능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판결문 확인 결과,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와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임차인의 건물인도의무의 이행제공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결국 임대인 계약위반으로 볼 수 없어 손해배상의무가 없다고 판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관련된 판단은 다음과 같다.




★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0. 2. 14.선고 2019가합452 임대차보증금 등


1. 인정사실


가. 원고는 2016. 11. 30. 피고와 사이에 원고가 피고로부터 성남시 분당구 이매로 000에 있는 다가구주택 000호(이하 ‘이 사건 주택’이라 한다)를 임대차보증금 3억 2,000만 원, 임대차기간 2017. 2. 28.부터 2019. 2. 27.까지로 정하여 임차하기로 하는 내용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피고에게 같은 날 3,000만 원, 2017. 2. 28.경 2억 9,000만 원을 각 지급함으로써 위 임대차보증금 전액을 지급하였다.


나. 원고는 위 임대차계약 기간 만료 전인 2018. 11. 25.경 및 2019. 1. 24.경 피고에게 갱신거절의사를 명시적으로 통지하였다.1)


2. 청구에 관한 판단


가. 임대차보증금 반환 청구 부분


앞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위 임대차계약은 원고가 그 기간 만료 1개월 이전부터 피고에게 갱신거절의사를 통지함으로써 2019. 2. 27.경 기간 만료로 종료되었다. 따라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고에게 임대차보증금 3억 2,000만 원을 반환할 의무가 있다(피고는, 원고가 갱신거절의사를 통지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나, 갑 제7, 8호증의 각 기재에 의하면 원고가 위 임대차계약 기간만료 1개월 이전부터 문자메시지로 피고에게 갱신거절의사를 거듭 통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비록 피고가 이에 답신하지는 아니하였으나 피고의 휴대전화번호로 문자메시지가 전송되었고 피고가 이를 수신하는 데 장애가 있었음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는 이상, 이는 그 무렵 피고에게 도달하였다고 봄이 경험칙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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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손해배상 청구 부분


1)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 부분


원고는, 자신은 피고에게 갱신거절의사를 통지한 후 2019. 1. 3.경 정00와 사이에 성남시 중원구 00동 000에 있는 000아파트 00동 00호에 관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그 무렵 정00에게 계약금 3,000만 원을 지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사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고 그 대금으로 124만 원을 지급하였는데, 피고가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바람에 위 계약금 합계 3,124만 원(= 3,000만 원 + 124만 원)을 몰취 당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그 손해배상으로 위 3,124만 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지급을 구한다.


임차인의 임차목적물 인도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는 원칙적으로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으므로, 임대인의 동시이행항변권을 소멸시키고 그에게 임대보증금 반환의무의 지체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차목적물을 인도하거나 적어도 그 이행제공을 하여야만 한다(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1다77697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 사건에서 원고가 피고에게 갱신거절의사를 통지한 후 새로운 주거지에 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2019. 2. 28.경 실제로 이사를 준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원고가 이 사건 주택 인도의무의 이행제공을 준비한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고, 이를 넘어서 그 이행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 대하여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이행지체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아니하므로, 이를 전제로 한 원고의 이 부분 청구는 나머지 점에 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위자료 청구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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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주장한 사실관계에 기초하면 의뢰인은 임차인으로서 충분히 이행제공을 다한 것으로 판단되었고, 3천만원에 대한 배상판결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2심 사건수임 후 항소이유서 작성을 위해 기록을 검토한 결과, 예상대로 1심 소송대리인이 이행제공문제를 간과하여 이 부분에 대한 주장입증을 소홀히 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뢰인이 주장하는 진실은, 이사당일 이삿짐업체를 통해 집에서 이삿짐을 꾸려 1층 빌라 주차장까지 짐이 나오기까지 했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임대인과 많은 전화와 문자가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이삿짐이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의뢰인과 대화를 통해 관련 증거도 넉넉히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소송대리인은 이삿짐업체와 체결한 계약서를 제출하는 정도로 입증을 마무리 해버렸다. 의뢰인은 변호사를 믿고 다른 증거제출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법률문외한이라 소송에서 필요한 입증의 정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당시 사실관계를 다시 정리해서 최근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는데, 관련부분만 발췌해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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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당일 이삿짐이 집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집주인과 연락이 잘 되지 않고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당사자의 급박하고 절절한 마음을 나타내기 위해 집주인에게 보낸 욕설 섞인 문자메시지까지도 증거로 제출했다. 건물인도라는 임차인 의무의 이행제공을 인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청구하는 임차인은 자신의 이행제공사실을 포함한 상대방의 계약위반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데, “입증”이라는 것은 법관을 확신의 단계에 도달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때문에 사실관계의 입증은 중요한 증거 위주로 하되 최대한 많은 증거를 제출하는 등 최선을 다해야 한다. 판사는 제출된 증거를 통해 사실관계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보니, 실체관계 판단에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판사를 납득시키기 위해 소송당사자는 항상 최선을 다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진실이 있으니 법원에서 잘 판단하겠지’라는 안이한 마음으로 대처하면, 위 사건처럼 아쉬운 결과를 얻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盡人事 待天命 !! 지난 25년간 변호사로서의 좌우명이다.




다음은 항소심인 수원고등법원 2020. 9. 24.선고 2020나13577 임대차보증금 등 판결이다.




(1) 피고의 손해배상책임 여부

임차인의 임차목적물 인도의무와 임대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는 앞서본 바와 같이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으므로, 임대인의 동시이행항변권을 소멸시키고 그에게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의 지체책임을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임차목적물을 인도하거나 적어도 그 이행제공을 하여야만 한다(대법원 2002. 2. 26. 선고 2001다77697 판결 참조). 그런데 쌍무계약에 있어서 일방 당사자의 자기 채무에 관한 이행의 제공을 엄격하게 요구하면 오히려 불성실한 상대 당사자에게 구실을 주는 것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일방 당사자가 하여야 할 제공의 정도는 그 시기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합리적으로 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다36511 판결 참조).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임대기간 만료일인 2019. 2. 27.에 종료되어 원고가 피고에게 이 사건 주택을 인도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를 종합하여 보면, 원고는 2019. 1. 24. 피고에게 2019. 2. 28. 오전 8시에 이사한다고 문자메시지로 통지하였고, 2019. 2. 27. 저녁에도 다시 피고에게 다음날 오전 8시에 이사한다고 문자메시지로 통지하여(갑 제8호증의 2) 이 사건 주택을 인도받을 것을 통보하였던 사실, 원고는 위와 같이 이사하기 위하여 2019. 1. 3. 정00와 사이에 00마을아파트에 관하여 임대차보증금 3억 5,000만 원, 임대차기간 2019. 2. 28.부터 2021. 2. 27.까지로 정하여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2019. 1. 11. 정00에게 계약금 3,000만 원을 지급한 사실, 원고는 2019. 1. 11. 한진익스프레스 주식회사와 사이에 이사일자를 2019. 2. 28.로 정하여 화물운송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한진익스프레스 주식회사 소속 직원들이 2019. 2. 28. 오전경 원고의 이삿짐을 포장하거나 나르기 시작하였던 사실, 그런데 피고는 위 이사일에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고 결국 원고는 이사를 중단하였던 사실이 인정된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 기간 만료일 이후 원고가 이사일로 예정하였던 2019. 2. 28. 피고에게 이 사건 주택의 인도의무에 따른 이행제공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으므로 피고는 위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불이행으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2) 손해배상의 범위

앞서 본 증거들 및 갑 제26호증의 음성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보면, 피고가 위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바람에 원고는 2019. 2. 28.에 지급하기로 한 00마을아파트의 임대차보증금 잔금 3억 2,000만 원을 지급하지 못하여 결국 00마을아파트의 임대인인 정00에게 계약금 명목으로 지급한 3,000만 원을 위약금으로 몰취당한 사실, 피고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불이행으로 인하여 위와 같이 이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결국 원고가 2019. 2. 28.경 위 한진익스프레스 주식회사에게 위약금으로 120만 원을 지급하였고, 붙박이장 이전설치 계약을 하였던 주식회사 한샘서비스원에게 같은 날 위약금으로 4만 원을 지급한 사실이 인정된다. 그런데, 피고가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따른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위와 같은 손해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통상의 손해가 아니라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393조 제2항에 따라 채무자인 피고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책임을 진다. 채무자가 그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의 여부는 계약체결 당시가 아니라 채무불이행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0다97136 판결 참조).

우선 원고가 위 위약금 3,000만 원 및 120만 원을 몰취당하거나 지급하게 된 손해에 관하여, 피고가 채무불이행 시점인 2019. 2. 28. 당시 원고가 위와 같은 손해를 입게 된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피건대, 앞서 본 인정사실 및 증거들, 갑 제21 내지 23, 32호증, 을 제1호증의 2, 3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보태어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 즉 ① 원고는 2019. 2. 28. 피고에게 이 사건 주택을 인도함과 동시에 피고로부터 임대차보증금(3억 2,000만 원)을 반환받은 다음, 같은 날 그 금원으로 00마을아파트에 관한 임대차계약에 따른 임대차보증금 잔금(3억 2,000만 원)을 지급할 계획으로 위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고, 피고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피고는 이 사건 주택을 포함한 별지 목록 기재 다가구주택 건물을 소유하면서 위 건물의 주택을 여러 차례 임대하였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갑 제32호증, 을 제1호증의 2, 3)}, ② 따라서 피고는 원고의 위 이사예정일에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아니하면 원고가 00마을아파트에 관한 임대차계약에 따른 임대차보증금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이사도 하지 못하여 그로 인한 위약금을 몰취당하거나 지급하게 되는 손해를 입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③ 더구나 원고는 이사 예정일 전날인 2019. 2. 27. 19:30경 피고에게 “내일 보증금 반환 입금계좌입니다. 신한은행 110-287-971692입니다. 08시 이사니까 참고하시어 입금바랍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갑 제8호증의 2) 이사 예정일에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것을 요청하였고, 원고가 2019. 2. 28. 오전경 이사가 시작될 무렵 피고에게 수차례에 걸쳐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 통화를 시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되지 않자, 같은 날 12:18경 피고에게 “오늘 이사갈 집 전세금 잔금 치르는 날인데 계속 전화 안 받고 연락 없으면 계약금 3천만 원은 임대인 책임입니다. 감수하셔야 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갑 제9호증의 3) 피고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을 경우 그로 인해 원고가 00마을아파트에 관한 임대차계약의 계약금3,000만 원을 위약금으로 몰취당하는 손해를 입게 됨을 통보하였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는 위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불이행 당시 원고가 위와 같은 손해를 입게된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음으로 원고가 붙박이장 이전설치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여 4만 원의 위약금을 지급하게 된 손해에 관하여는,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원고가 위와 같은 손해를 입게 된 특별한 사정을 피고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따라서 피고는 위 임대차보증금 반환의무 불이행으로 인하여 원고가 입은 3,120만 원(정 00에게 몰취된 계약금 3,000만 원 + 한진익스프레스 주식회사에게 지급한 위약금 120만 원) 상당의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항소심에서 이루어진 치열한 입증 덕분에 재판부를 설득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억울한 의뢰인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줄 수 있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위 판결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해 이사 갈 곳의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지 못해 계약금을 몰수당한 손해를 보증금 미지급 책임에 따른 “통상”손해가 아니라 “특별”손해로 판단하고 이를 위한 사실관계 인정에도 노력한 점에 특징이 있다. 특별손해에 대한 인식과 이를 위한 입증에 더 유념할 필요가 있음을 잘 보여주는 판시인 것이다.


특별손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라는 제목으로 2008. 1. 14.자로 발표한 필자 칼럼을 소개한다. 이 사건처럼 임대차보증금반환을 전제로 체결한 이사 갈 다른 집 임대차계약이 보증금 미반환으로 파기되면서 계약금 몰수당한 케이스를 소재로 한 것이다. 칼럼 작성 당시 선례가 될 대법원판결이 없어 주변 여러 판사들과 의논하면서 작성한 기억이 생생하다(이번 칼럼작성을 계기로 다시 대법원판결을 검색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민사상 손해는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로 구분해 볼 수 있다(설명의 편의상 불법행위가 아니라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만을 염두에 두고 설명해보기로 한다). 용어 그 자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통상손해는 거래관념에 비추어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보통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손해인 반면에, 특별손해는 통상손해에 해당되지 못하는 특별한 사정으로 발생한 손해를 의미한다. 우리 민법은, “통상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책임 있는 사람이 이러한 손해발생사실을 알거나 알 수 있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당연히 배상청구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특별손해”에 대해서는 그 손해발생사실을 상대방이 알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만 배상청구가능 하도록 구분하고 있다. 통상손해와 달리 특별손해로 인정되는 손해에 대해서는 그 손해발생사실을 배상책임 있는 사람이 알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을 배상을 청구하는 사람이 입증해야만 하는데, 입증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어떤 손해가 통상손해인지 아니면 특별손해인지의 문제는 입증책임과 관련해서 배상 여부나 배상 액수를 현실적으로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통상손해이냐, 아니면 특별손해이냐 하는 것은, 거래당사자의 직업, 거래의 형태, 목적물의 종류 등의 제반사정을 종합해서 당사자들이 그러한 손해의 발생을 어느 만큼 용이하게 예견할 수 있었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당사자들이 일반적, 객관적으로 당연히 그 채무불이행으로부터 발생하리라고 예상하였어야 할 손해이면 통상손해이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특별손해가 된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런 구분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판단이 명확하지 않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임대차계약이 종료될 무렵에 임대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돌려받을 것을 전제로 세입자가 다른 집을 구했는데, 임대인이 보증금을 제 때 내주지 못해 결국 새로 구한 집의 계약이 파기되면서 세입자가 계약금을 몰수당하는 손해를 입은 후에 이를 기존의 임대인에게 청구한다면, 이 손해는 통상손해일까 아니면 특별손해일까?


이 점에 관해 최근에 서울서부지방법원 2007. 12. 20. 선고 2007나6127호 손해배상판결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 판결은 이런 손해를 통상손해로 판단했다(물론, 이 판결은 이런 손해를 통상손해라고 판단하면서도, 가사 통상손해가 아니라 특별손해라고 하더라도 임대차계약만료 전에 세입자가 이사갈 것을 임대인에게 미리 통보했고, 새로운 계약체결 사실과 계약위반시 위약금손해까지 발생할 수 있다는 부분까지 사전에 임대인에게 고지했기 때문에 손해발생사실을 임대인이 알았다고 보충적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는, 지금의 우리 사회통념으로는 이런 손해를 통상손해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이 판결에 대해 다른 여러 법조인들과 상의한 결과도 대체로 필자의 생각과 비슷했다). 임대차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것이 당연시되고 이를 전제로 세입자가 다른 집을 구하는 것이 보편적이라면 이런 손해를 통상손해로 볼 수 있겠지만, 우리 거래관행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임대차기간이 종료되더라도 임대인이나 세입자 모두 아무 말 없이 임대차기간을 연장하는 경우도 많고, 기간이 종료했다고 해서 아무런 말도 없이 다른 집을 구해버리는 것이 거래관념상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 법원의 판단에는, 지금처럼 기간이 끝났는데도 임대인이 자진해서 보증금을 돌려 줄 생각도 하지 않고 세입자가 알아서 보증금을 빼나가야 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관행이고 또 이런 관행을 조속히 고쳐야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필자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통상손해로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아직 우리의 거래관념으로는 이를 특별손해로 해석하되, 임차인에게 이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임대인이 알거나 알 수 있었다는 식으로 폭넓게 인정해서 부당한 관행을 바꿔나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한다.

어쨌든, 합당한 배상을 받고 거래를 원만하게 잘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문제는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특별손해를 배상받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손해를 알거나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입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런 준비는 비단 적절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서 뿐 아니라, 손해배상에 부담을 느낀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약을 틀림없이 이행해야하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해서 법적인 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과 주의를 필요로 한다. -이상-


<참고조문>

민법 제393조 (손해배상의 범위)
①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한다.
②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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