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팅의 중심' IBM 왓슨연구소를 가다
그러다 보니 국가 간 슈퍼컴퓨터 개발 경쟁은 양자컴퓨터 개발 경쟁으로 옮아 붙었다. 미국에선 IBM과 구글, 인텔이 주도하고 있고 중국 정부는 대학을 중심으로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은 작년 6월 66큐비트 프로세서를 개발해 시연했다. 슈퍼컴퓨터로는 8년 걸리는 복잡한 계산을 1시간 20분 만에 끝냈다. 양자컴퓨팅 리포트(Quantum Computing Report)에 따르면 USTC가 66큐비트 개발로 가장 앞서 있고 IBM(64큐비트), 구글(53큐비트), 인텔(49큐비트) 등이 뒤를 잇는다. 양자컴퓨팅의 약점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큐비트가 온도, 소음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큐비트는 일반적으로 100마이크로초 이내에 속성을 잃는다. 그래서 극초저온을 만들어야 한다. '퀀텀 샹들리에'는 거대한 냉동기다. 양자프로세서가 위치한 가장 밑 부분의 온도를 절대 영도(화씨 영하 459도, 섭씨 영하 273도) 수준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1980년 물리학자 폴 베니오프가 양자 역학 모델을 제시한 뒤 연구가 시작됐지만, 개발 속도는 늦다. 하지만 최근 혁신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IBM의 아빈드 크리슈나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양자컴퓨팅이 실험 단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2014년 3큐비트 프로세서를 시연했던 IBM은 작년 말 127큐비트 프로세서 ‘이글’을 공개했다. IBM 측은 "기존 슈퍼컴퓨터가 안정적으로 시뮬레이션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초의 양자프로세서"라고 설명했다. 올해 말엔 433큐비트 프로세서 ‘오스프리'를 내놓을 예정이며, 내년 1000큐비트 이상의 ‘콘도르’를 발표할 계획이다. 차우 디렉터는 "올해 말 '오스프리'가 나오면 양자 우위(Quantum Advantage) 시대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자컴퓨팅의 효용이 기존 컴퓨팅을 넘어서는 시기가 열린다는 얘기다. 상용화 단계로 옮겨간다는 의미이기로 하다. 실제 양자컴퓨터 성능이 높아지자 산업계는 이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선물, 옵션, 주식, 통화, 원자재 등 기초 자산의 가격 변화에 따른 파생상품의 적정 가격을 찾아내기 위해 양자 컴퓨팅을 통해 시뮬레이션하고 있다. 엑슨모빌은 수요, 날씨 등을 감안해 수백척에 달하는 천연가스(LNG)선의 복잡한 글로벌 운송 경로를 정하는 데 활용한다. 보잉은 항공기, 우주선 등에 들어갈 수많은 부품을 제조할 때 어떤 소재를 섞어 쓰는 게 가장 적합할지 시뮬레이션을 한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배터리 신기술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재료를 썼을 때 나타나는 복잡한 반응 메커니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암젠, HSBC, BP, 딜로이트, 델, JP모건, 도요타 등 IBM의 퀀텀 네트워크 파트너는 180개 사가 넘는다. 현재 20여대에 달하는 IBM의 양자 컴퓨터는 하루 평균 35억 회 가동된다. 바이오 등 벤처기업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스콧 크라우더 IBM시스템즈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신약 개발은 상상력의 게임"이라며 "특정 물질의 인체와 병원에 대한 효용성을 양자 컴퓨팅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찾아냄으로써 신약 개발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양자 컴퓨팅 시장이 향후 5000억 달러 규모 이상으로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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