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키이우가 함락되지 않는 이유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전면 침공을 감행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결정은 충격이었다. 2021년 10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중시키면서 위기가 고조됐지만 진짜 전쟁이 터질지는 몰랐다.

개전 초기에는 러시아군이 단숨에 키이우를 장악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전 세계 최강인 미군과 맞설 수 있다는 ‘붉은 군대’의 압승이 점쳐졌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구심점이 된 코미디언 대통령

이변(?)을 이끈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다. 러시아의 공격이 시작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 무책임하게 NATO 가입을 운운한 게 문제였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벌써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도 퍼졌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에 남아 항전의 구심점이 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달 2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수호하고 세계를 통합시켰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럽의회에서 “삶이 죽음을 이길 것이며,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라고 연설한 것을 두고 “찰리 채플린이 윈스턴 처칠로 변모한 것 같았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도 거셌다. 해외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우크라이나인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속속 귀국했다. 복싱, 테니스, 축구 등 스포츠 스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폴란드 국경에는 가족을 피신시키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차량 행렬이 줄을 이으면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줬다.

곡물 수탈 등 옛 소련의 농장 집단화 정책은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최대 350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대기근 ‘홀로도모르’를 가져왔다. 우크라이나의 반(反)러시아 감정은 2014년 크림반도 합병으로 커졌고 이번 침공으로 폭발했다.

최신 무기로 날개 단 항전 의지

첨단 기술이 만든 무기도 전황을 바꾼 요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의 최신 전차도 ‘성스러운 재블린(St. Javelin)’ 앞에선 나약할 뿐”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2018년 우크라이나에 수출한 대전차무기 ‘FGM-148 재블린’에 러시아 탱크, 장갑차, 헬리콥터가 대책 없이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키이우가 함락되지 않은 건 이 같은 신무기의 공이 컸다.

‘성스러운 재블린’ 사례에서 보듯 미국 등 서방의 원조와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는 우크라이나 항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뒤에서 지원만 할 뿐 파병 등으로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만약 지도자와 국민들이 항전 의지를 잃었다면. 이 같은 측면 지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객관적인 전력 열세를 만회하는 것은 싸우고자 하는 결의였다. 제3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는 평화를 구걸하기 위해 로마에 모든 무기를 넘겼다. 하지만 로마의 속임수였다. 뒤늦게 나뭇가지 등을 들고 항전하던 카르타고는 철저하게 파괴돼 멸망한다. 처음부터 항전 의지를 굳혔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새로 들어서면 대북 정책도 바뀔 것이다. 강경이든 온건이든 우선 중요한 건 국민들이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다. 그다음 미국과 중국이 맞붙는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반드시 뜻을 한데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