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폴 전문가 한국 합동훈련 지도…"DVI, 세계적 표준화 추세"
"한국 과학수사 수준 높아…재난희생자 신원확인 인력 늘려야"
"해외에서는 한국식 '7' 표기를 '9'로 볼 수도 있으니 중간에 작대기를 그어 구별이 되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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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충남 아산 경찰수사연수원에서는 경찰과 해양경찰 과학수사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들이 'DVI 합동훈련'에 한창이었다.

DVI(Disaster Victim Identification)는 재난 희생자 발생 시 과학적인 신원확인을 위해 국제경찰형사기구(인터폴)에서 마련한 국제표준 절차다.

이번 훈련을 참관하면서 조언을 해 주기 위해 방한한 하워드 웨이(59) 인터폴 DVI 훈련교수요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얀 보호복 차림의 교육생들은 가상의 재난 현장에서 폴리스 라인 내 바닥에 누운 마네킹을 유심히 관찰했다.

구획 안에서 각 조원은 마네킹의 소지품을 찾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열심히현장 정보를 기록했다.

마네킹의 옷과 소지품을 보며 열심히 의논하기도 했고, 신원이 확인된 마네킹은 우측 팔에 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하워드 요원은 신원 확인이 끝난 마네킹과 교육생들이 적은 기록지를 보며 실습 결과물을 확인했고, 지갑과 신분증이 함께 발견되면 어떻게 구분해서 보관하는 게 좋은지와 같은 '디테일'까지 조언했다.

하워드 요원의 조언을 들은 교육생들은 이날 오전에만 세 차례 반복 훈련을 했다.

이번 훈련은 인터폴 DVI 전문가 2명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28일부터 나흘간 이뤄지고 있다.

교육생들은 재난 사고 현장 수색과 희생자 검시·부검, 지문·DNA 분석과 유가족 면담 등 일련의 수습 절차를 익히게 된다.

경찰청은 2018년 'K-DVI'(재난희생자 신원확인팀)를 발족해 운영 중이며, 인터폴 등 국제사회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2019년 5월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K-DVI 과학수사관들이 파견돼 지문 감식 등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한국 경찰이 DVI 관련 분야에 공을 들이는 건 기후변화로 인한 화산, 지진, 쓰나미 등 자연재해는 물론 각종 안전사고가 증가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처럼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 대비 내지 대응하기 위한 활동 가운데 피해자 신원확인을 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한 업무로 꼽힌다.

"한국 과학수사 수준 높아…재난희생자 신원확인 인력 늘려야"
전날 DVI 훈련 오전 과정을 마치고 만난 하워드 요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DVI에 대해 "기준에 부합하는 모든 유용한 정보를 최대한 빨리 종합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워드 요원은 런던 경시청 경감 출신으로, 세계 각국의 훈련에 참여 중인 'DVI 베테랑'이다.

"DVI의 첫 단계는 실종자들의 리스트를 작성하는 겁니다.

비행기 추락이나 열차 사고처럼 정확히 사상자가 누군지 파악할 수 있는 경우는 시신과 신원을 매칭하기만 하면 되지만, 자연재해나 쇼핑몰 화재처럼 누가 사망했는지 어려운 경우도 있죠. 사건이 발생하면 상황 대응반은 실종자 수색 요청을 하루에 몇천 건씩 받기도 해서 신뢰할 만한 실종자 리스트를 잘 작성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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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리스트 작성이 끝나면 가족을 면담하고, 국제 DVI 표준 규정에 따라 치아와 지문, DNA 등 사람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는 것들로 신원을 확인하며 한국의 경우 지문이 특히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하워드 요원은 이후에는 수집한 모든 정보를 종합해 해당 인물의 고유 특징을 파악하는 단계, 파악한 정보를 하나로 모으는 단계 등으로 정리된다고 덧붙였다.

DVI는 여러 나라가 관계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더욱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DVI 국제 공조는 2004년 발생한 인도양 지진해일 이후로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그때 DVI 표준이 발전했죠. 오늘 교육생들이 활용한 노트도 그때 인터폴에서 개발된 거고요.

이후로 유럽에서의 테러나 말레이시아 비행기 추락 사고 같을 때 DVI가 많이 활용됐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도 추후 협업할 일이 생길 때 필요한 도구들을 공유하기 위함이죠."
하워드 요원은 "앞으로 DVI는 점점 중요해질 것"이라며 "여전히 많은 국가는 재난이 발생하면 실종자 가족이 있는 텐트에 들어가 신원을 확인하는데, 앞으로 신원 확인에 대한 표준화가 중요해지고 기준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유족에게 DVI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가족을 찾고 확인하는 작업은 남은 가족에게 안심을 주고, 사망자에 대해서는 각자 문화적 관습에 따라 장례를 치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워드 요원은 지난 이틀간 한국 교육생들의 훈련을 지켜본 소감을 묻자 "과학수사 분야 전문가들의 전문성에 굉장히 놀랐다.

우수한 역량을 가진 한국 경찰과 앞으로도 협력 관계를 유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DVI 전문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DVI 인력은 국가 인구에 비례해서 있어야 한다.

DVI는 경찰만의 업무가 아니고 다양한 기관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한국 과학수사 수준 높아…재난희생자 신원확인 인력 늘려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