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곁에 묻힌 에릭 홉스봄…10주기 앞두고 평전 출간
뿌리를 짐작하기 어려운 그의 성에 19세기 후반 유럽의 복잡다단한 역사가 함축돼 있다.

폴란드계 유대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1917∼2012) 집안의 원래 성은 옵스트바움(Obstbaum)이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제정 러시아 군대의 징집을 피해 폴란드에서 독일로, 다시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은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기 위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이집트의 행정을 넘겨받고 자국민을 보냈다.

에릭 홉스봄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을 때 집안의 성은 출입국 관리들에 의해 이미 두 차례나 바뀌어 있었다.

심지어 가족끼리도 성을 달리 적었다.

역사학자 홉스봄의 10주기를 앞두고 번역·출간된 '에릭 홉스봄 평전'은 그가 평생 놓지 않은 마르크스주의는 독일 베를린에 살던 1930년대 초반 싹텄다고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대공황으로 총체적 붕괴가 임박한 듯했고, 나치가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직전이었다.

좌파는 공산주의 운동으로 파시즘을 척결하려 했다.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미덕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였다.

" 가난에 시달리다가 일찍 부모를 잃은 홉스봄은 공산당에서 가족의 대체물을 찾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홉스봄은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영국 국내정보국(MI5)으로부터 집중 감시를 받았다.

모교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얻지 못한 이유도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었다.

대신 정규직으로 강단에 선 버크벡칼리지는 노동자를 위해 야간강좌를 여는 학교였다.

홉스봄은 이곳에서 어느 정도 지식과 관심이 있는 독자를 위한 역사 서술을 고민했다.

혁명·자본·제국을 키워드로 '장기 19세기'를 규정한 그의 3부작은 이같은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마르크스 곁에 묻힌 에릭 홉스봄…10주기 앞두고 평전 출간
영국 공산당과 반목한 그는 동독과 체코 등 외부를 지원하는 데 힘을 쏟았다.

BBC에서 재즈방송을 하게 된 배경도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극적인 입장 변화였다.

스탈린 치하 소련은 재즈를 '타락한 부르주아 문화의 산물'로 규정했다.

스탈린 사망 이후 공산당원에게 재즈는 '자본주의 미국에서 억압받는 흑인 노동계급의 음악'이었다.

그가 생전에 원한 대로 시신은 인터내셔널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화장장에 들어갔고, 유해는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의 칼 마르크스 옆에 묻혔다.

홉스봄은 세상을 떠나기 전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적었다.

"나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일종의 게릴라 역사가로, 이를테면 포격을 퍼붓는 문서고의 뒤편에 놓인 목표물을 향해 곧장 진격하기보다는 측면의 덤불에서 사상의 칼라시니코프 소총으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역사가로 묘사하고 싶다.

"
책과함께. 리처드 J. 에번스 지음. 박원용·이재만 옮김. 984쪽. 4만3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