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노조 "형평성 문제 야기한다" vs 복지부 "시행착오 줄이겠다"
[이슈 In] 7월부터 지역건보료 계산 때 실거주 매입·전세 대출금 뺀다는데
오는 7월부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재산 보험료를 매길 때 주택 구입이나 임차 때 빌린 금융부채를 빼주도록 한 개정 건강보험법 시행과정에서 초기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장 현장에서 공제업무를 집행해야 할 건강보험공단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폭증할 민원을 현실적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23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9년 12월 말 개정된 건강보험법에 따라 올해 7월부터 정부가 정한 일정 기준 이하의 집을 실제로 살기 위해 사거나 임차(전세)하려고 금융기관에서 빌린 금액은 지역가입자의 건강보험료를 매길 때 재산에서 빼야 한다.

개정 건강보험법 72조는 지역가입자가 실제 거주를 목적으로 일정 기준 이하의 주택을 구매 또는 임차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법에서 규정한 금융회사 등으로부터 대출받고 그 사실을 건보공단에 통보하는 경우에는 해당 대출금액을 평가해 보험료 부과점수 산정 때 빼도록 했다.

개인 간 금전거래는 적용되지 않는다.

저소득 취약계층의 재산보험료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복지부는 조만간 구체적 시행방안을 담은 건강보험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하고 시행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계획이다.

입법 당시 건보공단은 주택구매 시 실제 거주 목적인지 아닌지 확인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보통 고소득 가입자의 부채가 저소득층보다 더 많아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현재 건보료는 직장가입자에게는 소득(월급 외 소득 포함)에만 보험료율에 따라 물리지만, 지역가입자에게는 소득뿐 아니라 재산(전·월세 포함)과 자동차에 점수를 매기고 점수당 단가를 적용해서 부과한다.

지역가입자의 재산 보험료는 공시가격의 60%를 과표(과세표준액)로 잡고 지역 간 구분 없이 60등급으로 나눠 '재산 보험료 등급표'에 근거해서 산정하는데, 최저 1등급은 재산 450만원 이하, 최고 60등급은 77억8천124만원 초과다.

[이슈 In] 7월부터 지역건보료 계산 때 실거주 매입·전세 대출금 뺀다는데
◇ 건보노조 "형평성·역차별 문제 야기할 수 있다"
이번 건강보험법 개정 때 개정안을 곧바로 시행하면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여론을 의식해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 시기를 2022년 7월로 늦췄는데, 막상 시행 시기가 임박하면서 실행과정에서 갖가지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건보 당국도 고심 중이다.

건보공단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며 금융부채 공제 법안(개정안)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사실상 보이콧 선언을 했다.

노조는 개정안이 무엇보다 공제의 형평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계든 기업이든 자금 운용 전략의 일환으로 부채를 활용한다.

실생활에서는 경제적 여유가 충분해도 자금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자 융자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실이 이런데도 저소득층 여부를 주택 구입이나 임차 시 금융권에서 융자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노조측은 지적한다.

누구든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다면 '주택구입용'이나 '임차용'으로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하는 게 일반상식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개정안이 시행되면 금융부채 없이 집을 사거나 빌린 지역가입자는 공제 혜택을 못 받는 등 상대적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지역가입자들에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라고 부추기고 장려하는 꼴이라고 노조 측은 비판했다.

더욱이 개정안은 실거주 주택 이외에 아무리 많은 토지나 금융소득이 있더라도 따지지 않고 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하지만, 집 구매 이후에 중간에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는 공제에서 제외하도록 해 형평성에 어긋날뿐더러 역차별마저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금융부채를 공제해주려고 해도 시스템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점도 걸림돌이다.

제1, 2금융권의 금융부채와 채무상환 자료는 은행권과의 협력으로 건보공단과 연계해 어떻게든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업체로 대표되는 제3금융권은 속수무책이다.

대부업체도 금융실명제법 시행령에서 정한 '금융회사 등'에 포함되기 때문에 집 구입 때 대부업체에서 빌린 대출금도 원칙적으로 공제해줘야 한다.

문제는 금융당국에 등록해야만 하는 제1, 2금융권과는 달리 제3금융권인 대부업체는 신고만으로 설립할 수 있고 공적 감독은 허술하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부업체는 전국에 1만1천개나 있을 정도로 난립해있다.

지금으로서는 대부업체의 금융거래 자료는 건보공단이 사실 여부를 전혀 검증할 수 없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는지, 빌린 돈을 갚았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데 대부업체의 대출·상환 증빙자료를 지역보험료 부과과정에 반영해 공제해주라는 것은 보험료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공적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부업체에서 대출받은 것처럼 위장하는 편법도 만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슈 In] 7월부터 지역건보료 계산 때 실거주 매입·전세 대출금 뺀다는데
◇ 복지부 "법 취지 맞춰 시행착오 줄여 나가겠다"
나아가 현재의 건보공단 인력과 조직으로는 개정안 시행을 감당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지역건보 전체 가입 세대는 830만 세대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가 금융부채를 안고 있을텐데, 이들 세대가 공제신청을 하면 공단의 업무는 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어떤 정책이든 실현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 민원들을 감당할 수 있는 조직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로 작년 9월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 지급기준을 건강보험료로 정하자 이의신청이 46만건이나 건보공단 일선 지사에 일시에 쏟아지면서 업무중단 사태를 빚은 바 있다.

노조 측은 "만약 개정안 취지를 살리고자 한다면 1주택자에 한해서 일정 가격 이하 주택이나 전·월세의 재산보험료 기본공제를 확대해 주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입법기관에서 만든 법에 명시된 만큼 행정기관으로서는 법의 취지에 맞춰서 시행착오를 줄여가면서 법 규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집 살 때 빌린 금융부채마저 보험료 매길 때 반영하는 바람에 그간 지역가입자의 볼멘소리가 적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정안의 취지는 높이 살 만하다"고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전문가는 다만 "시행과정에서 대출사례별로 누구는 공제받고 누구는 공제받지 못해 불만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제도를 잘 설계해서 형평성·공정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힘쓰고, 근본적으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보험료는 소득에만 부과하고 사는 집에는 매기지 않는 쪽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