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대결 넘어 협업으로 가야 할 단일화
프랑스 정치학자 뒤베르제는 정치 현상에 내재하는 갈등과 통합, 대결과 타협의 이중성을 보고 ‘정치란 야누스의 얼굴(politics as Janus faced)’을 하고 있다고 했다. 로마신화에서 야누스는 문(門)의 신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문에 앞뒤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치의 문은 열리면 길이지만 닫히면 벽이다. 열림과 닫힘의 야누스적 얼굴이 바로 정치다.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를 두고 구성원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갈등은 본질적이다. 그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따라 우리도 핵을 개발하자는 의사를 가진 국민이 있을 수 있고, 북한이 핵을 가졌다고 우리도 가진다면 북한의 핵개발을 비난해온 논리가 사라지고 원자력 발전도 위험한데 핵개발은 절대 안 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정치란 이런 해결점 없어 보이는 ‘갈등’을 조정해 ‘합의’로 이끌고 ‘공동체 통합’을 이루는 행위다. 이렇게 정치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창조적 예술(art)이다.

대선 투표일을 앞두고 후보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단일화 방식이다. 하지만 진정 중요한 것은 방식이 아니라 명분과 목적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선거공학적 단일화라면 과거 정치와 다르지 않다.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권력 나눠먹기를 위한 일시적 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일화의 명분은 대선 이후에 맞을 정치 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여론조사 우위를 보이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2024년 4월 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극단의 여소야대 정국을 피할 길 없다.

여야가 사사건건 국회에서 부딪히는 극단의 ‘동물국회’와 그에 따른 ‘식물정부’의 모습이 보인다. 국민은 다시 절망할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면 ‘일합니다’의 집행력과 180석 절대다수 의석에 기반을 둔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독주가 결합하게 된다. 국정 폭주가 보인다.

따라서 후보 단일화 논의는 ‘여소야대’ 정부나 ‘국정 폭주’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시작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승리연합을 넘어 가능한 한 많은 정치 세력을 포함하는 대연정(grand coalition)으로 승리해야 한다. 이재명-안철수 또는 윤석열-안철수의 소연정이 아니라 윤석열-안철수-심상정의 대연정이라야 여소야대 정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이재명-안철수-심상정의 대연정이라야 내부의 견제와 균형으로 국정 폭주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 1997년의 DJP 연합 경험을 참고해야 한다. DJP 연합은 김종필의 장관 임명권 행사에 대한 권력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실패의 측면과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연립내각을 유지한 성공의 측면을 동시에 가진다. 하지만 DJP 연합 실패의 단초는 진보와 보수의 연정에 내재된 이념 갈등을 원만히 극복하지 못한 데서 찾아야 한다. 효용성을 상실한 보수와 진보의 분열을 넘어 탈이념과 중도 실용에 기반을 둔 대연정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또 대연정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을 개헌 없이 해결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권력 독점이 아닌 권력 공유, 단독이 아닌 협업의 정치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새 정치의 탄생이다. 이런 대연정은 단일화하는 후보자 간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원칙에만 동의한다면 못할 이유가 없다.

미래 정치는 보수·진보 분열과 대결을 넘어 타협의 정치, 권위적 국정 집행을 초월한 민주적 국정운영, 거짓이 아닌 진실, 불신이 아닌 신뢰, 권력 독점이 아닌 권력 공유, 단독정부의 협소한 인재 찾기가 아닌 연립정부의 폭넓은 인재 등용이 돼야 한다.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대한민국 정치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승자 독식이라는 과거의 정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권력 공유와 협업이라는 새 시대 새 정치를 실현하는 후보자들의 단일화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선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로의 선택이어야 한다. 구태 정치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후보라면 대한민국을 미래로 이끌 수 없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정치인들의 창조적 예술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