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세쿼이아 명품 산책로와 다양한  관상수가 눈을 즐겁게 하는 익산 아가페정양원 전경.
메타세쿼이아 명품 산책로와 다양한 관상수가 눈을 즐겁게 하는 익산 아가페정양원 전경.
많은 여행지 중 전북 익산만큼 볼거리가 많은 고장도 별로 없을 겁니다. 찬란했던 백제 문화의 흔적이 깃든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물론 춘포역 일대의 근대 문화유산까지 역사 유적지가 가득하지요. 억새가 가득한 만경강은 그야말로 낭만의 절정입니다. 여기에다 세상 어떤 수목원보다 매혹적인 정원까지 최근 일반에 개방됐습니다. 그야말로 천의 얼굴이 된 셈입니다. 익산의 황금빛 정원을 찾아 느긋한 휴식을 즐겨보면 어떨까요.

무료 양로원의 부속정원이 핫한 명소로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에 있는 아가페 정양원(靜養院)은 ‘비밀의 정원’으로 불린다. 고(故) 서정수 신부가 정원을 처음 가꾸기 시작한 후 50년이 지난 최근까지 외부에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양원 관계자를 제외하고 익산 토박이들조차도 이곳 정원을 둘러본 이가 손에 꼽힐 정도다.

아가페 정양원은 원래 서 신부가 오갈 곳 없는 노인 30여 명을 보살피던 무료 양로원이었다. 국내에서 ‘복지’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에 자선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정양원이 자리를 잡으면서 서 신부는 시설 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자연 친화적인 수목 정원을 조성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매달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기부금에만 의지할 수 없어 정원에서 자란 나무를 판 수익금으로 양로원 운영비와 생활비를 충당한 것이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아가페 정양원의 나무들은 부쩍 키가 크고 수종도 다양해졌다. 여느 수목원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조경이 화사해졌다. 규모도 100만㎡나 돼 하나의 거대한 동산에 가깝다. 넓은 대지 위에 갖가지 수목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특유의 향기를 발산하는 정원으로 성장했다. 익산시는 사회복지법인 아가페와 함께 아가페 정양원의 부속정원을 ‘아가페 정원’이라고 이름 붙이고 지난 9월부터 시민에게 무료로 개방했다. 전북 제4호 민간정원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메타세쿼이아 산책로 일품

길이 1670m에 이르는 산책로에는 붉은빛 백일홍, 마치 공작새가 화려한 날개를 활짝 펼친 듯한 공작단풍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관상수가 즐비하다. 우아하게 나뭇가지를 늘어뜨린 가문비나무와 쭉 뻗은 후박나무, 잣나무까지 더해져 어떤 정원에서도 보지 못한 이국적인 자태를 뽐낸다.

정원의 랜드마크는 하늘과 맞닿은 듯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산책로다. 아가페 정원 설립 초기에 심은 500여 그루의 나무는 높이가 40m에 이르는 명품 산책로가 됐다. 숲길 사이로 들어서면 마치 동화 속 신비의 숲으로 발을 디딘 듯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하늘로 쭉쭉 뻗은 메타세쿼이아 길도 인상적이지만 그 앞에 듬성듬성 있는 당단풍에도 시선이 머문다. 앙상한 가지에 물기가 쭉 빠져버린 꽃이 달렸다. 정원 초입의 어마어마한 밤나무도 이채롭다.

숲속에 자리한 작은 도서관에서는 책을 꺼내 들고 의자나 잔디에 앉아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아가페 정원은 수선화, 튤립, 목련 등 34종의 꽃들이 향연을 벌이는 여름철도 아름답지만 가을에서 겨울까지도 인상적인 황금빛으로 물들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근대 역사의 흔적 남아 있는 춘포

고요하게, 거룩하게…비밀의 정원이 보낸 하트 시그널
아가페 정원과 함께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 춘포면 춘포리다. 일제 강점기에 대장촌(大場村)으로 불리던 춘포리는 요즘으로 치면 대규모 농업을 위해 만든 신도시였다. 춘포면 중심에 있던 일본인 마을에는 호소카와, 이마무라, 다나카 등 3개 농장을 중심으로 일본 규슈 중부 지방 구마모토에서 건너온 일본인 이주민과 지주들이 조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춘포 역사지에 따르면 전 일본 총리의 할아버지인 호소카와가 운영하던 농장은 3개 군 100촌락에 걸친 9917㎢(1000정보)의 대규모 농장이었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패망 후 일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아직까지 춘포에는 일본인이 살던 가옥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 가옥이다. 일본식 정원까지 갖춘 대저택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폐역이 됐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인 춘포역도 꼭 들러볼 만하다. 역사 벽면에는 춘포역이 아니라 대장역으로 불리던 시절 이곳을 오갔던 학생들의 교복과 기차 시간표는 물론 당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익산=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