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조사위 "발포 명령자 찾는 노력, 문건·증언 종합 유의미한 결과 전망"
5·18 유혈진압 책임은 누가?…전두환을 향한 증거들
90세로 세상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 5·18 민주화운동의 잔혹한 유혈 진압에 대해 사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광주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광주 학살에 대해 나는 모른다"고 주장하며 발포 명령은 물론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자신은 5·18 당시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불과했던 만큼 5·18을 진압한 군부대의 지휘권이 없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계엄군의 공식 지휘라인과 달리 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5·18 연구자들의 자료는 차고 넘친다.

계엄군을 배후에서 움직인 505보안부대와 공식 지휘라인이 아니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매일같이 헬기를 타고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누군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1995~1996년 12·12 및 5·18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와 재판에선 전씨의 책임이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특히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전씨가 측근을 통해 '자위권 발동'을 지시했는데 이것이 곧 발포 명령으로 볼 수 있다며 그에게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자위권이란 군인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각자 알아서' 발포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하지만, 진압 현장에선 발포 명령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5·18 유혈진압 책임은 누가?…전두환을 향한 증거들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이뤄진 5월 21일 2군사령부가 작성한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문건에는 '전 각하(전두환) : 초병에게 난동 시에 군인복무규율에 의거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도청 앞 집단 발포를 포함해 대부분의 발포 행위는 반란이라는 행위에 종속된 것으로 판단해 '내란목적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더욱이 전씨가 발포 명령을 내렸다고 볼 수 있을 만한 증거가 없다며 전씨에게 면죄부를 줬다.

결국 발포 명령을 받은 사람은 있지만, 발포 명령은 내린 사람이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후 정부의 진상조사에서도 이 부분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조사, 2017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조사가 이뤄졌지만 전씨가 발포 명령을 했다는 직접 증거는 찾지 못했다.

당시 과거사위는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마지막 남은 퍼즐을 찾기 위해 출범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기존의 조사 방식과 달리 '상향식 조사'를 택했다.

진압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들로부터 받은 광범위한 진술이 발포 명령자를 가리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9·11테러 당시 주범을 찾기 위해 미 정보기관에서 사용하던 빅데이터 분석 기법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조사위는 이미 진행된 조사에서 유의미한 진술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자위권과 별개로 사전에 발포 명령을 받아 움직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5·18 유혈진압 책임은 누가?…전두환을 향한 증거들
도청 앞 집단 발포와 헬기 사격, 광주 외곽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 등은 자위권 발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된 탓이다.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 관계자는 "5·18 당시 발포 명령자를 찾는 등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여러 문건과 증언을 종합하면 유의미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