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관 기념전 '야금:위대한 지혜'…전통·현대미술 융합전시
청동 동검부터 영상 작품까지…40주년 앞두고 달라진 호암미술관
최고 수준의 고미술품과 전통 정원 등으로 한국의 아름다움을 전해온 용인 호암미술관이 변화에 나섰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수집한 한국미술품을 바탕으로 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은 그동안 국보·보물급 소장품 등을 내세운 상설전 위주로 운영됐으나,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융합전시를 적극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지난달 재개관하면서 마련한 기획전 '야금(冶金): 위대한 지혜'에서도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야금'은 광석 채굴에서부터 금속을 추출, 정련해 사용 목적에 적합한 형상으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전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금속 미술을 통해 한국미의 독창성을 짚어본다.

금속 유물의 제작 기술이나 장식 기법 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장구하게 이어진 야금의 지혜와 예술성을 살펴본다.

야금은 자연과 신에 대한 숭배에서 출발했다.

제사장들은 하늘과 소통하는 의식에 청동 도구를 사용했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국보인 '세형 동검 및 동모' 등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금속에는 왕의 권위와 호국의 염원도 실렸다.

금관과 장신구에 다양한 금속과 보석이 활용되고 강철 갑옷과 칼 등이 제작되며 금속의 예술성과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다.

전시에는 국내 현존하는 가야 금관 중 유일하게 완벽한 형태를 갖춘 국보 금관 등이 출품됐다.

야금 기술은 종교 미술에서 꽃을 피웠다.

예배의 대상으로 조성된 불상과 격식을 갖춘 의식 도구도 금속으로 만들어진다.

고려 시대 철로 제작한 불상인 '철조여래좌상'은 특유의 거칠고 어두운 표면이 부처의 강인함과 자비로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청동 동검부터 영상 작품까지…40주년 앞두고 달라진 호암미술관
우리 민족 역사와 함께한 야금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전시는 국가무형문화재인 박종군의 장도 등 전통에 새로운 미감을 더한 작품을 소개한다.

또 이우환, 박석원, 정광호, 양혜규, 존배, 서도호, 조환 등 철을 소재로 한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야금의 창의적인 생명력이 전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전시의 시작과 끝에는 영상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김수자의 '대지의 공기'는 붉은 용암이 굳고 재처럼 변하고, 그 사이로 새로운 용암이 솟는 장면을 담았다.

생성, 변화, 소멸을 거치는 자연의 원리, 인간의 삶을 투영한다.

마지막에 마주하는 박경근의 영상 작업 '철의 꿈'은 거대한 배가 건조되는 조선소와 펄펄 끓는 용광로가 있는 제철소 풍경 등으로 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파격적인 공간 연출도 눈길을 끈다.

호암미술관은 내년 개관 40주년을 앞두고 내부 시설 등을 리뉴얼하는 작업을 진행 중으로, 기존 벽면과 바닥 등을 철거해 콘크리트가 노출된 상태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주제에 맞춰 작품을 설치한 전시대 등은 모두 철로 제작했다.

정해진 동선에 따라 정면에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360도 모든 방향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

어두운 조명은 몰입감을 살려준다.

전시는 국보 5점, 보물 2점, 현대미술 9점, 국가무형문화재 작품 5점 등 총 45점을 선보인다.

미술관 규모를 고려하면 대형 전시는 아니지만, 작품과 전시 구성 등은 호암미술관의 저력과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방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호암미술관은 개관 40주년을 맞는 내년 4월까지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리뉴얼 작업은 리움과 마찬가지로 정구호 크리에이티브디렉터가 이끌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관계자는 "호암미술관에서도 리움처럼 현대미술 작가들이 참여하는 전시를 여는 등 새롭게 변신할 것"이라며 "이를 위한 준비로 전시장 공간 등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동 동검부터 영상 작품까지…40주년 앞두고 달라진 호암미술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