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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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미국 주식시장은 초호황을 맞았다. 인터넷, 모빌리티, 전자상거래 분야의 성장주는 2~3배 급등했고 코로나19 피해주인 항공, 유통, 화장품 등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유일하게 하락세를 거듭하는 업종이 있다. 인류의 오랜 필수재이자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해온 제약이다.

미국에 상장된 제약주는 코로나19 이전 주가의 절반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약가 인하를 내세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약가를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주가가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화이자(PFE)는 2021년에만 주가가 15%(10월 5일 기준) 가까이 올랐다. 코로나19 백신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매출이 급증한 덕분이다. 2021년 코로나19 백신 매출로만 335억달러(약 40조원)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화이자는 백신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인수합병(M&A)과 신약 개발을 확대하며 또 한번 도약을 노리고 있다.
화이자, 파이프라인만 100개...“코로나 이후도 성장한다”

코로나 백신 매출 40조원
미국에 상장된 빅파마(대형 제약사)는 대부분 주가가 정체 상태다. 존슨앤드존슨은 2021년 주가가 1.97%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노바티스는 10% 떨어졌고, 머크는 6% 상승했다. 두 기업은 매출 기준 글로벌 4, 5위 제약사다. 반면 화이자는 2021년 15% 상승했다. 2021년 8월에는 사상 최고점을 찍으며 연초 이후 37% 오르기도 했다.

상승세를 이끈 것은 실적이다. 화이자는 2021년 매출로 800억달러(약 95조원)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2020년(420억달러)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상반기 누적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8% 증가한 335억5900만달러(약 40조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104억4000만달러(약 12조원)로 53% 확대됐다.

회사 측은 2021년 코로나19 백신(BNT162b2) 매출로 335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중은 41.8%다. 공동개발사인 바이오엔테크와 나누는 수익,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제한 백신의 마진(매출 대비 순이익)은 20% 후반대다. 코로나19 백신으로만 올해 10조원 가까이 버는 것이다.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을 제외해도 10%의 성장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단발성 이익을 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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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가져온 나비효과

화이자는 매출 기준 세계 최대 제약사다. 1849년 설립돼 170년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다. 독일 이민자 출신인 찰스 화이자와 사촌인 찰스 에르하르트가 2500달러를 빌려 공동창업했다. 1891년 에르하르트가 사망하자 화이자가 그 지분을 시가의 50% 가격에 사들였다. 생존하는 사람이 동업자의 지분을 절반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동업계약에 따라서다. 화이자는 세상을 떠나기 6년 전인 1900년까지 회사를 경영했다.

회사를 장남인 찰스 화이자 주니어가 승계했지만 5년 만인 1905년 회장직에서 축출됐다. 당시 전 재산인 150만달러를 경마로 날릴 정도로 도박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1905년 3남인 에밀 화이자가 회장으로 선출돼 1941년까지 회사를 경영했다. 1941년 에밀이 사망한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화이자는 창업 초기 구충제를 만들어 팔았다. 화학자인 찰스 화이자와 제과업자인 찰스 에르하르트의 기술이 합쳐진 결과다. 회사가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코카콜라로 대변되는 탄산음료산업이 개화하던 1880년대다. 화이자는 탄산음료 필수원료인 구연산을 이탈리아에서 수입해 미국에 팔았다.

◆2차대전 기간 페니실린 생산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화이자에 더 큰 기회가 됐다. 수입길이 막히면서 미국에서 구연산 품귀현상이 빚어지자 화이자가 자체적으로 개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1917년 화이자는 설탕에 균주를 배양해 구연산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고, 1919년에는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구연산 생산은 화이자가 화학업체에서 제약사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다. 구연산 대량생산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통해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기간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대량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합군이 사용한 페니실린 물량의 대부분이 화이자 공장에서 생산됐다.

화이자는 단순한 생산업체에 안주하지 않았다. 항생제의 가치를 알아본 화이자는 1950년 자체 항생제인 옥시테트라사이클린을 개발하며 신약개발사로 변신했다. 첫 블록버스터 약품인 피록시캄(항염증제)은 1980년에 출시됐다. 1989년에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처음 발견했다.

비아그라는 화이자 연구진이 고혈압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했다. 1989년 임상 과정에서 발기부전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하지만 발기부전 치료제로 정식 승인된 것은 1998년이다. 화이자는 특허가 만료된 2017년까지 비아그라로 매년 10억~2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M&A로 1위가 되기까지
1997년 화이자는 미국 제약사 워너램버트와 고지혈증치료제 리피토(1996년 출시)에 대한 공동마케팅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999년 워너램버트가 다른 기업과 합병하려고 하자, 적대적 M&A에 나서 2000년 워너램버트를 903억달러(약 106조원)에 인수했다. 이 딜은 아직까지도 제약업계 최대 규모 M&A로 기록된다.

블록버스터 의약품 리피토를 보유한 워너램버트를 인수한 화이자는 머크를 제치고 미국 1위 제약사로 올라섰다. 인수 이전에는 2위였다. 이후 파머시아(2002년), 와이어스(2009년), 호스피라(2015년) 등을 차례대로 사들이며 세계 1위 제약사로 올라섰다. 2014년에는 1118억달러를 들여 아스트라제네카를 인수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자체 신약 개발과 M&A를 통해 화이자는 2019년 말 기준 블록버스터 의약품 10개를 보유하게 됐다. 블록버스터란 연간 매출이 10억달러 이상인 의약품이다. 하지만 수익성을 개선하고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작년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특허만료 사업부를 떼어내 신약 개발과 판매에 집중하는 것이 골자다.

2019년 말 특허만료 사업부인 업존을 제네릭 전문 기업인 마일란과 합병한 뒤 작년 11월 특허만료 의약품 전문 회사인 비아트리스를 출범시켰다. 블록버스터였지만 특허가 만료된 비아그라, 리피토 등이 비아트리스 상표로 묶였다. 화이자는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 등 특허보유 의약품 전문 회사로 변신했다.
사진=화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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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라인 100개 보유

2021년 7월 말 기준 화이자는 총 100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임상을 마치고 허가를 검토 중인 약물이 8개다. 임상3상 중인 약물은 23개, 임상2상은 40개, 임상1상은 29개다. 2021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를 받은 프리베나20은 가장 치료 범위가 넓은 폐렴구균백신이자 잠재적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평가받는다.

리서치업체 모닝스타는 희귀 심장질환 치료제 빈다켈·빈다맥스도 잠재적 블록버스터로 주목했다. 빈다켈·빈다맥스는 세계 각국으로 출시되는 단계여서 매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빈다켈·빈다맥스는 2021년 2분기 매출이 5억100만달러(약 6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77% 급증했다.

동시에 경구용 항응고제 엘리퀴스가 점유율을 늘려가며 전체 실적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존 치료제인 와파린보다 효능이 우수해 지속적으로 점유율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2021년 2분기 엘리퀴스 매출은 14억8100만달러(약 1조75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다.

다른 주요 의약품은 유방암 치료제 이브란스로 2분기 기준 14억400만달러(약 1조66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립선암 치료제인 엑스탄디는 2012년 출시됐지만 적용 환자군을 확대하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2분기 매출이 3억300만달러(약 3500억원)로 14% 증가했다. 코로나19 백신을 제외한 2분기 매출 증가율은 10%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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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배당 겸비한 만능주

화이자는 단기적으로 코로나19 백신으로 매출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종식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알약 형태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2상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예방과 치료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최근 주가가 조정되면서 가격 부담도 적어졌다.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12배 수준이다. 동시에 배당수익률은 3~4% 정도다. 코로나19에 대한 모멘텀과 배당에 따른 안정성을 동시에 노릴 수 있다. 연간 배당금도 매년 5~10% 늘리고 있다. 배당성향은 70%(배당금/순이익)에 달한다.

당장의 리스크는 바이든 행정부의 약가 인하 압박이다. 다만 약가 인하는 제약 업종 전체에 적용되는 것이어서 화이자만의 악재라고 볼 수 없다.

2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화이자는 미래 청사진으로 세 가지 키워드를 언급했다. 첫째는 혁신에 집중하는 바이오파마, 둘째는 퍼스트인클래스 파워하우스, 셋째는 안정적인 실적 성장형 기업이다. 이런 목표와 관련해 모닝스타도 “특허만료 사업부를 떼어낸 결정으로 화이자는 더 빠르고 혁신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화이자는 영업력이 뛰어난 제약사로도 평가받는다. 세계 각국에 방대한 판매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의료 소비가 급증하는 신흥국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희귀질환부터 항암제까지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덕분에 지난 170년간 보여준 성장세를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박의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