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째 젊은 작가 전시 지원…차세대 '미술계 스타' 등용문
서울 한복판에서 전시회를 여는 건 미대를 갓 졸업한 젊은 화가들에게 꿈같은 일이다. 유명 미술관과 대형 갤러리들은 실적도 배경도 없는 신진 작가에게 작품을 펼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재능이 있는데도 관객에게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잡지 못해 전업 작가의 길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서울 사간동에 있는 금호미술관이 매년 진행하는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은 2004년부터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지원 사업이다. 지금까지 19회에 걸쳐 83명의 작가가 선정돼 지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미술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작가도 적지 않다. 민간 기업이 세운 미술관의 지원 사업으로는 역사와 규모가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미술계 스타 산실’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

금호미술관은 금호문화재단의 미술 분야 사업을 담당하는 곳이다. 1989년 금호갤러리로 처음 문을 연 이후 30여 년간 700여 회에 걸쳐 동서양 회화, 설치미술,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하며 국민의 문화적 소양 증진에 힘써왔다. 2019년 모기업인 금호그룹이 유동성 위기로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기로 하는 등 경영난을 겪으면서 재단과 미술관도 한때 어려움을 겪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위기를 넘기고 경영 안정화에 성공했다.

금호미술관을 대표하는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은 2004년 박강자 당시 관장의 제안으로 탄생했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이 자국의 신진 미술가를 적극 소개하는 데 감명받은 박 관장이 추진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은 15년 넘게 이어지며 ‘미술계 스타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만 35세 이하(공고일 기준)인 한국 국적 작가는 장르에 상관없이 금호영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다. 3차에 걸친 심사에서 선정되면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기회를 준다. 올해 상반기에는 지난해(제18회) 공모 수상자인 노은주 문이삭 배헤윰 정진이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제19회) 공모에서는 무니페리 박다솜 이다희 조해나 최가영 허우중 등 6명이 선정돼 내년에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금호영아티스트로 선정됐던 작가 대부분은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정재호 작가(1회)와 박혜수 작가(10회)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고, 안정주 작가(4회)는 제17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작가로 뽑혔다. 금호영아티스트 출신 작가들은 “서울 미술계의 중심에 있는 공간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기회이자 도전”이라며 “개인전을 계기로 역량이 크게 성장했다”고 입을 모은다.

예술성과 상업성 겸비한 전시로 인기

금호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 등 국공립미술관과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등 국내 주요 상업화랑이 밀집한 지역의 한가운데에 있는 민간 미술관이다. 그 중간적인 위상처럼 전시 기획도 국공립미술관과 상업화랑의 장점을 겸비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나치게 전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다.
17년째 젊은 작가 전시 지원…차세대 '미술계 스타' 등용문
금호미술관이 지난해 5월부터 두 달간 연 김보희 초대전 ‘Towards’는 미술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앞에 매일 긴 줄이 늘어서면서 관람객 1만8000여 명을 기록했다. 하루 최다 관람객이 1400명에 달한 날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술관은 디자인·건축 영역으로 전시 주제를 확장하고 있다. 2019~2020년 열려 인기를 끌었던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전은 본격적인 디자인 전시로, 금호미술관의 디자인 컬렉션이 전시장에 나와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금 금호미술관에서는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인 ‘하나의 점, 모든 장소’가 열리고 있다. 강희정 구나 김원진 등 입주작가 9명의 회화와 설치, 조각 등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2005년 시작된 금호창작스튜디오는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만 40세 이하 작가에게 1년간 경기 이천에 있는 작업실을 제공하는 레지던시 사업이다. 국내 여러 비슷한 프로그램 가운데 명문으로 꼽힌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