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매여 있기보다 중국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아프간 문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중국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아프간 철군의 정당성을 역설한 것이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처럼 다른 나라를 위해 미군이 대규모 군사작전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미국 국익을 최우선시하는 ‘바이든 독트린’의 면모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프간보다 중국과 경쟁이 중요”

바이든 "다른 나라 위한 전쟁 안한다…中 위협에 집중"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철군은 떠나느냐 긴장을 고조시키느냐 사이의 선택이었다”며 “나는 ‘영원한 전쟁’을 연장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핵심 이익은 아프간이 다시는 미국 본토 공격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철군이) 올바른 결정, 현명한 결정,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단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세기 경쟁에서 새로운 도전에 맞서기 위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테러리즘과 싸우고 앞으로 계속될 새로운 위협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대표적 위협 요소로 거론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여러 전선에서 러시아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미국이 앞으로 10년 동안 아프간 문제에서 꼼짝 못하는 것을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견제와 미국 국익 수호를 내세워 아프간 철군에 대한 국내외 비판 여론을 불식하려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일부 미국 엘리트는 아프간에서 철수한 자원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환상을 갖고 있다”며 “하지만 중국의 경제력은 미국을 능가하고 중국의 부흥을 막으려는 미국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공산당 이론지 ‘추스’에 실은 기고문에서 “정신적으로 굳건히 서야 역사의 거센 흐름 속에서 우뚝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우리 당이 100년에 걸친 시련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혁명에 사활을 거는 강한 정신 덕분”이라며 당원들의 정신 무장도 촉구했다.

○“다른 나라 위해 군사작전 안 해”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놓고 아프간전 같은 대규모 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 20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실수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라며 두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는 도달할 수 없는 것 대신 성취 가능한 목표와 임무를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며, 둘째는 미국의 핵심 안보 이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철군 결정은 아프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며 “이는 다른 나라들의 재건을 위한 중대한 군사작전 시대가 끝나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임기 중에 과거처럼 이라크와 예멘, 시리아 내전 등에 미군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양한 논리로 아프간 철군의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대내외 비판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ABC방송이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와 지난달 27~28일 실시한 조사에서 60%는 바이든 대통령의 대응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간 수도 카불 함락 직전에 아프간 정부군을 최고의 군대로 치켜세운 녹취록도 나왔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바이든 대통령과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이 지난 7월 23일 14분간 나눈 통화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가니 대통령에게 “당신에게는 최고의 군대가 있다”며 “(탈레반 대원은) 7만~8만 명인데 견줘 당신은 30만 명의 무장된 군대를 가졌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