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묵 스님 "화는 참는 게 아닌 버려야 할 것…원인 알고 이해하면 자유로워져"
“매운 떡볶이를 먹거나 술을 많이 마신다고 화가 풀릴까요. 잠시 감각적인 만족은 얻을 수 있지만 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니 건강만 상하고 화를 더 키울 뿐입니다. 그렇다고 화를 참기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심신에 해롭습니다. 화는 분출하거나 참는 게 아니라 버려야 하는 거예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한국 사회 전반에 우울과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친교나 여행을 제한당하는 답답함에서부터 급증한 육아 부담, 자영업자와 실직자들이 맞닥뜨린 생계 위협까지 그 원인과 수위도 다양하다. 이런 정신적 괴로움을 대체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일묵 스님(사진)은 “화의 근본 원인을 알고 통찰하면 화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현실의 상황도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서울대 수학과 83학번인 스님은 박사 과정 재학 중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조계종 전 종정)의 제자인 원택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했다. 그 후 26년간 봉암사와 미얀마, 영국 등 국내외에서 수행한 뒤 춘천에 제따나와선원을 세워 선원장을 맡고 있다. 신간 《화, 이해하면 사라진다》(불광출판사)를 통해 화를 다스리는 법을 설파한 일묵 스님을 지난 28일 전화로 만났다.

[책마을] 일묵 스님 "화는 참는 게 아닌 버려야 할 것…원인 알고 이해하면 자유로워져"
일묵 스님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화를 극복하려면 먼저 화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적 관점에서는 우울과 답답함, 공포와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화다. 이런 화는 탐욕 때문에 일어난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괴로움이 화를 부른다는 것. 괴로움은 유한한 것을 영원하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가르침이 녹아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모든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비현실적인 얘기는 아니다.

“저조차도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화를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건 불환(不還)이라고 해서 완전한 깨달음 바로 직전에야 도달할 수 있는 단계예요. 하지만 적어도 저는 화가 났을 때 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원인과 버리는 방법을 알기에 화를 빨리 가라앉힐 수는 있지요.”

원인을 해결할 수 없는 화는 자신과 주변에 해를 끼친다. 이런 화를 분출하는 것도, 쌓아두는 것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장삼이사도 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에선 화가 가라앉지 않을 때가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일묵 스님은 “수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운동을 해야 근육이 자라고 힘이 생기듯이, 마음도 훈련해야 제어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어떻게 길들이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오랜 세월 축적해 왔어요. 그중 명상과 걷기 수행 등 실천 가능한 구체적인 수련 방법을 책에 담았습니다.”

화를 버리라는 가르침이 혹시 불합리한 현실을 체념하게 하고 현실 개선을 막는 건 아닐까. 그 반대라고 일묵 스님은 말한다. “세속을 바꾸는 동력 중의 하나가 욕심이나 화인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화를 통해 현실을 바꾸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분노로 어떤 일을 하면 상대도 역으로 분노를 느끼게 되고, 끊임없이 서로 화를 주고받으며 고통이 반복되지요. 같은 일이라도 화를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갖고 하면 결과가 다릅니다. 부처님께서도 생전 카스트제도를 부정하고 고치려 하셨지만, 이를 분노가 아니라 지혜와 자비로써 바꾸려고 하신 것처럼요.”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