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다이내믹 차체, 대우 BH115H에 영감 제공

2019년 5월6일, 미국 뉴욕의 M55 노선을 다니던 한 버스가 마지막 운행에 나섰다. 버스 회사 사장이 직접 운전대를 잡은 이 차는 40여 년간 북미 여러 곳에서 시민들의 발이 돼줬던 GMC RTS(Rapid Transit Series)였다.

이 버스를 아시나요?⑥-GMC RTS

1977년 첫 운행을 시작한 RTS의 역사는 197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연방교통국은 기존 시내버스 설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트랜스버스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트랜스버스는 운수사의 총소유비용 개선과 배출가스 저감 등 공적 목표뿐만 아니라 교통 약자를 위한 낮은 바닥과 공간 확장 등의 승객 편의성 향상도 포함했다. 이 프로젝트는 이 시기 미국 버스 분야에서 양강구도를 만들었던 GMC와 플렉시블이 뛰어 들었다.

이 가운데 GMC는 트랜스버스 이전부터 새로운 개념의 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RTX(Rapid Transit Experimental)'라 불리는 이 버스는 유선형 차체, 위 아래로 나뉜 슬라이딩 도어, 3열 좌석 배치 등의 내·외관 특징 외에도 최고 280마력의 가스 터빈 엔진, 열에너지 회수 시스템, 무단변속기 등의 동력계 혁신을 갖췄다. 이런 기술적 진보를 이룬 배경엔 당시 GM이 인수한 버스 제조사 옐로우코치와 엔진 제조사 디트로이트디젤 등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양산차에 쓰기엔 벅찬 기술들이었다. 무엇보다도 가격 상승이 불가피해 시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GMC는 대량생산을 위한 절충안인 RTS를 내놓게 된다.

이 버스를 아시나요?⑥-GMC RTS

1977년, 미국 미시간주 폰티악 공장에서 첫 RTS인 RTS-01이 출고됐다. RTS-01의 초도물량은 15대로,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텍사스, 매사추세츠, 댈라스의 각 교통국이 만든 컨소시엄에 판매됐다. GMC는 새 버스를 'ABD(Advanced Bus Design)'라 부르며 새로운 버스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RTS는 디트로이트디젤의 V8 7.0ℓ 8V71 엔진을 차체 뒤에 탑재했다. 독특한 점은 구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파워트레인을 가로로 배치한 구조 탓에 추진축과 그 주변 장치는 'Z'자를 그리며 엔진의 동력을 뒷바퀴로 전한다. 때문에 변속기도 전용으로 설계해야 했다. 1978년엔 V6 7.0ℓ 6V71 엔진을 얹은 RTS-03이 출시됐다. 6V71 엔진은 과거 여러 상용차에 먼저 장착했던 구형이었지만 8기통 엔진보다 연료 효율이 높아 판매대수가 급증하는 계기가 됐다.

RTS의 차체는 강철 프레임과 알루미늄 모노코크를 결합한 구조를 지녔다. 길이는 9.1m, 10.7m, 12.2m의 세 가지를 제공했다. 외관은 쐐기형 전면부와 유선형 차체, 패스트백 스타일의 후면부로 이뤄졌다. 특히 뒷 유리가 승용차처럼 누워 있어 공간활용도는 낮았다. 이로 인해 에어컨을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마저도 라디에이터 옆에 배치해 냉각 성능이 떨어졌다.

이 버스를 아시나요?⑥-GMC RTS

이 버스를 아시나요?⑥-GMC RTS

이 버스를 아시나요?⑥-GMC RTS

독특한 구조는 운행 부담으로 이어졌다. 변속기 내구성은 기존 버스의 1/6 수준에 불과한 5만㎞가 채 되지 않았으며 에어컨과 맞붙어있던 엔진은 과열되기 쉬웠다. 뉴욕 교통국 역시 자체 시험 결과 RTS-03에 적지 않은 결함을 발견하면서 리콜을 비롯한 개선 사항을 GMC에 요구했다.

1981년, GMC는 부분변경을 거친 RTS-04를 출시했다. RTS-04는 차체 뒷면을 네모반듯하게 설계해 엔진과 에어컨 간의 거리를 충분히 두게 했다.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터보차저를 더한 6V92T 엔진을 탑재했으며 차체 만듦새를 개선해 누수 논란에 대응했다. 이후 1986년엔 앞 차축의 서스펜션을 솔리드 빔 타입으로 변경한 RTS-06이 등장했다. RTS-06은 엔진을 세로로 배치하거나 메탄올을 연료로 하는 시도도 이뤄졌지만 대량 생산되진 못했다.

그동안 RTS는 첫 출시 이후 약 10년 만에 2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전 세대인 뉴 룩의 절반이 채 되지 않은 실적이었다. 결국 GMC는 1987년, RTS를 포함한 버스 제조 부문을 MCI(Motor Coach Industries) 자회사인 TMC(Transportation Manufacturing Corporation)에게 넘긴다. 하지만 TMC 역시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1994년, 볼보버스 자회사인 노바버스에 RTS의 디자인, 특허 등을 매각한다. 이로 인해 RTS-06는 세 회사가 만들었던 유일한 RTS로 꼽힌다.

이 버스를 아시나요?⑥-GMC RTS

1989년에는 다섯 번째 RTS인 RTS-08이 출시됐다. 시카고의 휠체어 탑승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앞 오버행을 늘리고 앞문의 면적을 키운 것이 특징이다. 2003년부터 RTS는 MTS(Millennium Transit Services)가 생산을 맡았다. 노바버스의 인력과 생산 시설을 이어받은 MTS는 CNG 엔진을 얹은 RTS를 텍사스주에 공급하는 등 RTS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한 RTS는 2012년 MTS와 함께 운명을 같이 했다.

한편, RTS는 국내에서도 닮은꼴을 찾을 수 있었다. 대우자동차가 1985년 선보인 BH115H·120H는 RTS의 전면부 디자인을 대거 활용했다. 그러나 섀시, 동력계를 비롯한 주요 부분은 공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우차는 GMC의 미국 대륙 횡단형 모델을 채택했다며 새 버스에 힘을 실어줬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