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대자연과 인간의 삶을 생각해보는…
[영화 속 그곳] 노매드랜드
"카약을 타면서 많은 걸 봤죠. 아이다호 강변에서 사슴 가족을 봤고, 콜로라도 호수에선 커다란 흰색 펠리컨이 눈앞에서 내려앉는 걸 봤어요.

벼랑에는 수백 마리의 제비집들이 매달려 있었어요.

제비들이 사방에서 날아다녔죠. 새끼 제비가 알을 깨고 날아오르는데 하얀 껍질이 바로 옆에 떨어졌어요.

정말 경이로웠어요.

그때 전 내 인생은 완성됐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에서 75세 나이에 집 없이 차를 타고 혼자 떠돌이 삶을 사는 스왱키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꽤나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고 자평한다.

[영화 속 그곳] 노매드랜드
노매드가 아니어도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목도하고는 순간적으로 '죽어도 후회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 지인은 티베트의 밤하늘에서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들을 보고 '죽으면 내 영혼이 이곳으로 날아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스왱키처럼 방랑 생활을 하는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먼드)은 생활의 기반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이다.

남편은 죽었고 직업도, 자식도, 집도 없다.

홀로 밴을 타고 떠돈다.

발걸음 닫는 곳에서 잠깐 일하다가 다시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가 이런 생활을 하는 배경엔 피폐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미국의 복지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사회과학을 말하지 않는다.

펀이 길 위에서 만나는 노매드들은 각기 사연이 다르다.

생을 끝내고 싶지만 강아지들을 버리고 떠날 수 없어서,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병원에서 보내기 싫어서, 부모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고…
[영화 속 그곳] 노매드랜드
영화는 노매드들이 떠돌면서 공통적으로 찾아 헤매고 또 공유하게 되는 그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어 한다.

삶에 목적이나 목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한 사람들도 있고, 새로운 목적이나 의미를 찾아 떠난 사람들도 있다.

오로지 현재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분모일 뿐이다.

'소유냐 존재냐'라는 철학자의 거창한 물음을 꺼내는 사람은 없다.

다만 지금까지 마음속에 뒀던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이 무너져 내렸거나 최소한 유예됐을 뿐이다.

최근 몇 년 새 다양성 확보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온 아카데미가 이 영화를 선택한 데는 수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맘속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끄집어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그곳] 노매드랜드
◇ 영겁의 세월 드러낸 대자연
가능한 큰 화면에서 볼 것을 권한다.

미국 서부의 대자연은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고 어느새 마음까지 흔들어 놓는다.

사우스다코타, 네브래스카, 네바다, 캘리포니아 등지를 돌며 6개월간 촬영했다.

웅장한 바위 산맥과 황무지, 광활한 사탕수수 농장,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극한의 감동을 준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펀이 임시직으로 일했던 배드랜즈(Badlands) 국립공원이다.

약 7천500만 년 전 물에 잠겨 있던 땅은 1천만 년 동안 융기하면서 로키산맥과 블랙힐스(Black Hills)를 만들었다.

그 후 블랙힐스에서 흘려 내려오는 물에 실려 온 모래와 흙들이 쌓이고 쌓여 거대한 침적물을 형성했다.

물과 바람은 수백만 년 동안 그 침적물을 깎고 쓸어냈다.

배드랜즈 국립공원의 기기묘묘한 바위산과 협곡은 그렇게 생겨났다.

[영화 속 그곳] 노매드랜드
이곳에선 8천만 년 전의 고대 해양 동물에서부터 2천만 년 전까지 수많은 고대 동물의 화석이 발굴됐다.

가깝게는 1890년 인디언들의 마지막 '고스트 댄스'(Ghost Dance, 춤을 추며 행했던 인디언들의 의례 행위)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50일 후 인디언 보호 거주 지역으로 이동하던 인디언 160여 명이 미국 정부군에 학살됐다.

잠시 머물며 일하다가 배드랜즈의 그 황량하고 기묘한 바위들 사이에서 잠깐 웃으며 포즈를 취한 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영겁의 세월을 빤히 드러낸 자연 그 날것들 앞에서 지금껏 살아온 날들의 한없이 '작음'에 한탄했을지, 땅과 목숨을 빼앗긴 원주인들의 '상실'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봤을지 우린 알지 못한다.

[영화 속 그곳] 노매드랜드
◇ 상영이 끝나면서 시작하는 영화
노매드들은 떠돌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을까.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의 주인공처럼 맛있는 피자를 베어 먹는 순간,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꽃잎이 손등에 떨어지는 순간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를 찾을지 모르겠다.

스왱키처럼 어머니의 자궁 같은 자연의 거대한 품에서 궁극의 희열과 만족을 얻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소유하는 자본주의적 삶에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히 소유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숙명을 지녔을 수도 있다.

다만 대자연 앞에서 내가 가진 것들이, 또 그 속에서의 삶이 어떤 가치를 지닐지, 어쩌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할지도 모를, 잠깐의 회의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속 그곳] 노매드랜드
주인공 펀은 떠돌며 알게 된 한 남자의 집에 초대받는다.

정착하는 삶이 유혹하지만, 그는 다시 유랑을 택한다.

그가 왜 떠나는지, 그게 옳은 길인지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명언에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