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블록체인 알쓸신잡] 2008년 경제위기와 Token Economy
지난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전 세계를 강타한 직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경제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경제학 석학들이 계시는데 왜 경제위기를 예측한 경제학자는 한 분도 없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졌고, 경제학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영국 학사원(BA)의 ‘팀 베슬리’와 ‘피터 헤네시’ 교수가 학사원을 대표해서 여왕에게 금융위기 예측 실패에 대한 견해를 정리해서 보냅니다.

이 서한은, 영국 최고 권위의 학술 협회인 BA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인 토론회에서 여왕이 하문한 금융위기 예측 실패 원인에 대한 견해들을 정리한 것인데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여왕에게 사죄하는 표현은 보이지 않지만,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아무리 많아도 생태계를 위협하는 커다란 위기 예측에는 취약한 배경을 솔직히 털어놓은 점이 주목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세계 최대규모의 헤지펀드로 성장한 미국 헤지펀드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회장 ‘레이 달리오’는 지난 2000년 초에 자체 개발한 ‘불황측정지수(depression gauge)’를 바탕으로 2007년 정확하게 경제위기를 예측하고 백악관으로 달려가 경제 관료들에게 위기를 설파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모든 경제 지표가 활황 시그널을 보내는 상황에서 달리오의 설득은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결국, 달리오의 주장과 같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경제위기 조짐이 보이고, 버블이 폭발할 지경이 되자 그들은 달리오를 찾기 시작했고,

뉴욕연방은행 총재인 팀 가이트너가 달리오를 만나 위기 징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직후 ‘베어스턴스 은행’이 파산하면서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미국은 유사이래 가장 커다란 경제위기를 겪게 됩니다.

달리오의 ‘브릿지워터 어소시에이츠’는 2008년 경제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다른 헤지펀드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는 기간 동안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순식간에 세계적인 히어로로 떠오릅니다.

물론 ‘닥터 둠’ 루비니 교수와 같이 경제위기를 예측한 학자도 있었지만, 대체로 학자들보다는 실물경제에서 뛰는 사업가들이 불황과 위기를 훨씬 빨리 알아챈다고 생각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자들은 아무리 빨리 정보를 접하고 이를 체계화해서 그 어떤 이론적 가설을 세워 발표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빨리 시장의 통계가 정리되고 자료가 축적되어도 다양한 자료를 정리하고 체계화해서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그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면에 내가 운용하는 자산이나 사업과 관련되어 시시각각 시장이 변하고 소비자가 변하는 최전선에서 뛰는 사업가들은 누구보다 시장과 Trend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업가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합니다.

‘레이 달리오’는 금융투자업에 뛰어든 이래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역사적인 경제위기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이를 컴퓨터를 통해 거대한 알고리즘을 만들어 검증했으며, 이 알고리즘은 시시각각 전 세계 모든 통계적 자료가 실시간으로 입력되고 분석되면서 종합적인 투자 정보를 생산해 냅니다.

그 결과  ‘레이 달리오’의 알고리즘은 2008년의 금융위기를 누구보다 먼저 예측해 으며, 선제 대응으로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로 발돋움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은 탄탄한 이론과 지식으로 무장한 경제학자들이며 이들의 기여도는 위대하고 그들의 시장에 대한 시각은 매우 소중하여, 인류는 오랜시간 경제학자들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다만 학자들과 사업가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을 보는 시각 차이가 존재하기에, 그 차이점은 서로 보완될 때 가치가 더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학문적인 이론과 실물경제 현장에서 느끼는 시각차이에서 나타나는 괴리 현상으로 볼 때 필자는 블록체인 암호화폐에서 거론되는 ‘토큰 이코노미’에 대한 이론적 배경과 실제 시장에서의 암호화폐 가치 형성 사이에도 깊은 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필자는 수 많은 토큰의 ‘토큰 이코노미’에 대한 주장을 접해 봤지만, 대부분의 설계에는 기본적으로 시장 논리가 빠져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행동심리학을 기초로 설계되는 모든 토큰 이코노미 이론에는 토큰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현한 보유(Hold)의 개념과, 비교적 안정적인 화폐로 재화와 교환 할 수 있다는 구매(Exchange)의 개념, 그리고 다른 블록체인 서비스의 토큰과 교환하여 상호 그 서비스를 사용(Use)할 수 있다는 확장된 개념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토큰들이 이러한 개념과 옵션을 적절하게 반영하였기에 자신들의 토큰 가격은 오를 것(그것도 크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토큰의 시장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 ICO나 IEO 과정에 참여한 매입자들의 토큰 구매 가격  차이입니다.

현재 암호화폐를 통한 Use나 Exchange의 기능이 활발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기술적 뒷받침도 많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 있는 것은 시장 참여자 중 자신의 토큰 매입 가격이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 어느 수준 인가에 대한 판단이 투자자들이 토큰가격의 상승을 기대하고 계속 보유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보유자의 투매를 예상하고 내가 먼저 던져 버릴 것인가? 에 대한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ICO나 IEO를 통해 토큰을 매각할 때 모든 토큰 투자자에게 동일한 가격으로 세일하지 못할 경우, 상장하자마자 내가 구입한 가격이 비싸다는 판단, 또 나보다 더 비싸게 산 사람들이 있다는 판단과 사업 주체에 대한 불신으로 토큰 가격의 폭락은 불 보듯 뻔합니다.

따라서 자금 조달에 급급하여 여기저기 상이한 조건으로 토큰을 판매할 경우(특히 과다한 보너스의 지급이나 현저하게 낮은 가격), Use나 Exchange 여부와는 관계없이 토큰 가격의 폭락을 불러와 생태계를 원천적으로 망가뜨리게 되고, 결국 그 프로젝트는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토큰 이코노미에 대한 이론적 바탕은 행동심리학일 수 있으나, 현실 세계에서는 토큰 세일 가격의 차이라는 점이 학자가 바라보는 시장과 사업가가 인식하는 시장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근영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