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것도 어떠한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난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눈을 뜨면 다시 감을 때까지 수많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과감히 선택할 수 있는 용기는 믿음에서 나오지 않을까? 믿음! 최소한 선택하는 그 순간에는 믿는다.

타인이 아닌 자신을 믿는 것이다. 지금 선택한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을 것이리라 믿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믿음이 사라졌다. 자신을 포함한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이 사회에도, 나아가 국가에 대한 믿음도 없어졌다.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의심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기를 위해 상대를 끌어 내리기 위한 의심은 이 사회에 필요악이다.

사람들은 간혹 어떤 일에 몰입하다보면 본질은 잊어버리고 본질 아닌 것에 매달려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이 몰입하는 그것이 정당한지, 객관적으로도 타당한지 자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작업이 없으면 자신도 모르게 자가당착(自家撞着) 빠지게 되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한 자신을 발견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내 몰리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결코 공직에 지명된 사람을 편들거나 폄하 (貶下)하고 싶은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사람을 이야기 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다. 그 이유는 인간의 마음에는 이미 이기(利己)와 욕심과 질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자신들과 대립관계에 있는 그 누구를 평가한다는 것은 엄청난 오류인 것이다. 이미 오류인 것을 가지고 오류 아닌 것을 찾으려고 하니 혼란만 조장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모두가 ‘개인의 역사’가 있다. 그 역사는 가정∙집단의 환경적 배경과 시대적∙사회적 배경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 진다. 그래서 한 사람의 역사를 살핀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작업이 아니며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고 지금 보여 지는 모습만을 두고 그 사람을 평가하고자 한다면 새롭게 형성된 가치기준에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이해가 필요하고 배려가 필요하다. 그 사람이 정말 윤리적으로 패륜아거나, 도저히 사회적으로 용납 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라면 좀 이해하고 넘어가 주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설령 드러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로 인해 그 사람이 맡을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일이 아니라면 좀 덮어 주는 용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그 누가 단죄(斷罪)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는 잘못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말 인간적으로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 사회는 지금 단죄만 있고 이해와 용서가 사라진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