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편지
이안눌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다
흰머리 어버이 근심할까 두려워
북녘 산에 쌓인 눈 천 길인데도
올겨울은 봄날처럼 따뜻하다 적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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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이안눌(李安訥·1571~1637)이 함경도 북평사(北評事)로 있을 때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며 쓴 시다. 북평사는 정6품 벼슬로 병마절도사의 참모 겸 보좌관이다.

시를 쓰게 된 배경은 이렇다. 먼 북방이라 교통이 험해서 아내가 보낸 편지와 겨울옷이 해를 넘겨 도착했다. 그 정성에 마음이 훈훈해졌지만, 변방 생활로 야윈 몸에 옷이 너무 커 입을 수가 없었다.

추위는 혹독했다. 칼바람이 살을 에는 듯했고, 쌓인 눈은 키를 넘었다. 먹을 게 모자라 늘 허기가 졌다. 편지에 이런 어려움을 털어놓고 싶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올겨울은 봄날처럼 따뜻하다’며 딴소리를 했다.

이 시는 다음의 2수로 이어진다. ‘먼 변방 산은 높고 길은 험하니/ 서울에 닿을 때면 한 해도 저물리라./ 봄날 부친 편지에 가을 날짜 적은 것은/ 근래 부친 편지로 여기시라 함이네.’

참 애틋하다. 먼 국경 지대, 오가는 이도 많지 않아 편지가 집에 닿으려면 연말이나 될 듯했다. 그래서 봄 편지에 가을 날짜를 적어 보냈다. 따뜻하게 잘 지낸다는 얘기나 편지에 적은 날짜는 다 거짓이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깊고 진실하다.

올 설날 집에 가지 못하는 우리 마음도 이와 같다. 지난달 29일 보낸 ‘늦게 온 소포’의 시낭송을 감상하며 나를 다독여 보자. 탤런트 김혜옥 씨의 목소리가 낭랑하면서도 뭉클하다. (고두현 시, 김혜옥 낭송 - ‘늦게 온 소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