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인플레)는 아직 병속에 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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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블루 웨이브' 영향으로 급속도로 올랐던 시장 금리가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뉴욕 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13일(미 현지시간) 주요 지수는 보합권에서 소폭 등락하다가 다우는 0.03% 내린 채로 마감됐고 S&P 500 지수는 0.23%, 나스닥은 0.43% 상승했습니다.
이날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금리)는 연 1.08% 선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금리가 안정을 찾은 건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완만한 CPI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에 부합했습니다. 완만하게 상승하는 수준을 이어간 겁니다. CPI는 전월 대비 0.4%, 전년 대비로는 1.4% 상승했고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1%, 전년 대비 1.6% 오른 것으로 나왔습니다. 근원 CPI 상승률은 11월 0.2%보다 상승 폭이 더 낮아졌습니다. 당초 예상 외로 높은 수치가 나올 수 있다는 일부 우려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많이 오른 유가를 빼면 오른 건 눈에 띄게 가격이 오른 건 거의 없었습니다. CPI 발표 직후 1.13%대에 거래되던 미 국채 10년물은 곧바로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② 1% 초반대 강한 채권 매수 수요
전날 10년물에 이어 이날 재무부가 실시한 24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미 국채 30년물 입찰도 연 1.82% 수준에서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입찰율도 2.34배 수준에 달했습니다. 이런 수준의 금리에서는 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상당하다는 걸 보여준 겁니다. 그만큼 시장에 많은 돈이 풀려있기 때문이겠죠.
③ Fed의 비둘기들
미 중앙은행(Fed) 인사들에게서도 계속적으로 '비둘기파'적인 언급이 나왔습니다. 리처드 클라이다 Fed 부의장은 이날 "2% 수준 인플레이션이 '1년간' 나타날 때(until we get inflation at 2% for a year)까지 우리는 우리 손을 묶으려한다. 우리는 그 때까지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왔다"고 밝혔습니다. 2% 금리를 감내하는 기간을 이전까지는 '상당한 기간'이라고만 했었는데 아예 '1년간'으로 구체적으로 못 박은 겁니다.
또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는 "물가 인상에 테이퍼링(양적완화 차원에서 매월 사들이고 있는 채권 매입 금액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것)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했고, 라엘 브레이너드 Fed 이사는 "현재 채권 매입 속도는 ‘꽤 오랫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건 아닙니다. 지켜봐야할 게 더 있습니다.
일단 14일 오후 12시30분(한국 시간 15일 새벽 2시30분) 제롬 파월 의장이 토론에 나섭니다. 월가에서는 파월 의장이 테이퍼링 시기 등에 대한 시장 일각의 우려를 깔끔하게 해소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파월 의장이 올 하반기에 테이퍼링이 없음을 명확히 밝힌다면 금리가 추가 하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조 바이든 당선자가 14일 공개하는 추가 재정 부양안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바이든 후보는 그 규모를 "수조 달러"(trillions of dollars)라고 몇 차례 말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규모를 그 이하로 보고 있습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1인당 수표 1400달러(기존 지급한 600달러를 더하면 2000달러) 지급에 쓰는 3000억 달러 등 모두 7500억 달러 규모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만약 논란이 있는 학자금 탕감 방안 등을 포함하는 수조 달러에 달하는 부양안이 공개될 경우 의회 통과 과정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대결은 불가피합니다. 정권 초기부터 양당 간 협력은 물 건너갈 수 있습니다. 부양책의 경우 단순 과반수로 통과시킬 수 있다고 해도 이는 향후 인프라딜 통과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이긴 하지만 오는 4~5월부터 본격적으로 살아날 물가입니다. 워낙 지난해 유가가 폭락했던 탓에 모두가 올 봄 물가가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이날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 초기의 일시적 물가 붕괴에 따른 기저효과로 인해 올 봄에는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 물가 모두 2%를 넘을 것이다. 심지어 물가가 3%에 이를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이런 수준의 물가가 이어질 경우겠지요. 캐피털이코노믹스는 그런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경기 순환주기 초기에 재고가 이례적으로 적은 상황"이라며 "성공적인 백신 보급에 의해 보복적 소비가 급증한다면 봄철 기저효과가 사라진 뒤 하반기에도 물가가 2%나 그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어쨌든 주식, 채권을 포함해 미 금융시장은 '블루 웨이브'를 소화하고 이제 전반적으로 다시 차분함을 되찾았습니다. 월가의 투자자 데이비드 헌터는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면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어느 시점엔 연 1.5%에 달할 것이다. 다만 단기로는 최근 급등세에서 어느 정도 후퇴하면서 0.95%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리가 단기적으로는 고점을 찾았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는 15일부터는 이제 4분기 어닝시즌이 본격화됩니다. 항상 그랬듯 금융주가 선봉에 섭니다. JP모간과 웰스파고, 씨티그룹이 15일 증시 개막 전에 실적을 내놓습니다.
다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떨어집니다. 이는 이번 어닝시즌이 특별한 가이던스를 주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4분기 실적 자체는 좋을 게 없을 겁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곳곳에서 봉쇄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팩트셋에 따르면 4분기 S&P 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은 전년 동기에 비해 8.8% 감소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만약 맞는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분기 이후 세 번째로 나쁜 분기가 될 것입니다. 당초 월가는 '기업들이 얼마나 2020년 실적 전망을 높일까'에 관심을 기울여왔지만, 여전히 바이러스 확산 속에 봉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구체적 전망치를 내놓을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날 공개된 Fed의 베이지북(경기동향보고서)에서도 이런 상황은 잘 드러납니다. Fed는 베이지북에서 "대부분 지역에서 경제 활동이 '완만하게(modestly)' 확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12월 "경제가 '완만한 혹은 보통(modest or moderate)' 수준으로 확장했다"고 기술한 것보다 후퇴한 표현입니다. 당분간 시장에서는 추가 모멘텀을 찾기위한 탐색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시장 내부에선 차분한 가운데 치열한 손바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활발한 것입니다. 경기 회복과 물가 상승을 기대하며 이로 수혜를 얻는 경기민감주, 가치주를 매수하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이날은 전날 떨어졌던 기술주, 성장주가 다시 반등하고 가치주가 주춤하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주춤한 것이죠.
월가 관계자는 "자세히 보면 애플 등 기술주는 올랐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작년 9월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JP모간 등 가치주는 오르다 멈췄다가 하면서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이날 사상 최고가를 찍은 종목들 중에는 무거운 종목, 즉 대형 가치주가 많습니다. 제너럴모터스(2010년 재상장 이후)와 캐터필러, 존슨콘트롤스, 에머슨일렉트릭, 캐피털원, 다우, SVB파이낸셜 등이 그런 주식입니다.
월가의 가치주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날 JP모간은 엑슨모빌에 대한 투자등급을 7년 만에 처음 '비중 확대'(overweight)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목표주가도 50달러에서 56달러로 높였습니다. 비용 절감과 유가 상승 등으로 향후 실적이 개선되면서 일관성 있는 배당이 가능할 것이란 이유에서입니다.
엑슨모빌에 대해선 전날 모건스탠리도 '비중 확대' 의견을 제시했으며 골드만삭스와 웰스파고는 지난달 긍정적 분석을 내놓았었습니다. 엑슨모빌의 주가는 올 들어 벌써 17%나 뛰어 7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또 도이치뱅크는 3M, 노무라는 GM에 대해 '매수' 의견을 제시했으며 제프리스는 비자와 마스터카드에 대한 투자등급을 '매수'로 올렸습니다. 주식을 거래하는 데 참고할 만합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