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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줄기세포 치료제의 역사는 2004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그해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는 세포 복제를 통해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하지만 다리를 쓰지 못하는 환자를 일으켜 세우고, 앞이 안 보이는 환자의 눈을 뜨게 해준다는 그의 약속은 논문 조작이 밝혀지며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 이후 우리나라의 줄기세포 산업은 눈에 띄게 위축됐고,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을 거의 끊다시피했다. 줄기세포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는 바닥을 쳤고, 그간 정직하게 연구해오던 과학자들은 긴 암흑기를 맞았다.

이런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줄기세포 치료제는 꾸준히 발전해오고 있었다. 20여 년간 연구 끝에 줄기세포의 허들로 여겨졌던 면역원성, 대량생산 가능성 등이 하나씩 해결되고 있다. 기반 기술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며 효능을 보이는 치료제도 하나둘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앤설리번은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이 2023년엔 33억8000만 달러(약 3조7248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줄기세포 치료제의 개발 현황을 보면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줄기세포를 이용한다. 국내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와 일본에서 주력하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그리고 가장 분화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배아줄기세포가 있다.

국내 바이오텍의 대세 ‘성체줄기세포’

우선 성체줄기세포를 보자. 일부 전문가는 “황우석 박사 덕에 국내에서 성체줄기세포 치료제가 발전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황우석 사태로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지원이 줄고 많은 이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면서, 이 분야가 많이 가라앉게 됐다.

그 시기 일본은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iPSC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쥐면서 iPSC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시작됐다. 결국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대다수가 성체줄기세포로 몰리게 된 것이다.

성체줄기세포 중에서도 성인의 골수, 제대혈, 피부, 지방조직, 탯줄이나 태반 등에서 얻은 중간엽줄기세포(MSC)를 주로 치료제에 활용한다. 추출하기가 쉬운 데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암 발생 위험이 없거나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모두 성체줄기세포, 그중에서도 중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한다. 2011년 파미셀의 급성심근경색 치료제 ‘셀그램-AMI’를 시작으로 2012년 메디포스트의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 안트로젠의 크론병 치료제 ‘큐피스템’, 2014년 코아스템의 루게릭병 치료제 ‘뉴로나타-알주’ 등 4개 치료제가 판매 승인을 받았다.

아직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없다. 하지만 유럽식약(EMA)은 2018년 지방 유래 중간엽줄기세포를 이용한 ‘알로피셀’을 승인했다. 항문 주위의 누공을 앓는 크론병 환자 치료를 위한 알로피셀은 기존 치료제로 효과가 부족할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시판 허가를 받았다. 알로피셀은 위약 치료를 받은 대조군과 비교해 관해(증상이 완화되거나 사라진 상태) 달성비율이 44% 더 높게 나타났고 치료 후 104주까지 효과가 지속됐다.

하지만 성체줄기세포는 채취 부위에 따라 활성이 제한적이고, 분화능력도 매우 낮은 단점이 있다. 대다수의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는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유용한 인자들에 의한 파라크라인 효과(주변세포 영향 효과)와 면역조절능력에 기대고 있다. 그렇다 보니 퇴행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일부 적응증만을 타깃으로 할 수 있어 제품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만능성과 윤리 문제를 한 번에 극복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

야마나카 교수가 처음으로 iPSC를 개발한 건 2006년이다. 야마나카 인자로 불리는 4개의 인자(Oct3/4, Sox2, Klf4, c-Myc)를 분화를 마친 체세포에 넣어주면 만능성을 가진 배아줄기세포로 돌아간다. 줄기세포의 근본적인 한계점으로 꼽히던 분화능과 윤리적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야마나카 교수는 iPSC를 개발한 지 6년 만에 이례적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노벨상 수상 이후 이 분야에 1조 원이 넘는 연구비를 쏟아부었다. 또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의 석권을 위해 제도도 정비했다. 재생의료 법률 개정을 통해 치료제 개발기간을 약3~4년 단축하도록 개선했다.

이런 정부의 노력으로 현재 다케다제약, 아스텔라스와 같은 일본 제약사들은 줄기세포 치료제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초기에는 iPSC를 만들기 위해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야마나카 인자를 세포 안으로 삽입했다. 하지만 이때 사용한 바이러스 벡터가 인간의 유전체에 무작위로 삽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여러 유전체의 불안정성이 확인되면서 새로운 방식의 2세대 iPSC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세대 iPSC는 바이러스 벡터 대신 플라스미드, mRNA, 단백질 등 새로운 전달체를 이용해 야마니카 인자를 전달한다. 2세대에서 사용되는 전달체들은 세포를 역분화시킨 뒤 분해되기 때문에 1세대에 비해 안전하다. 최근 일본에서 개발되는 iPSC 치료제는 대부분이 방법을 이용한다. 현재 망막변성, 파킨슨병을 치료하기 위해 iPSC를 각각 망막세포와 신경세포로 분화한 후에 연구자 임상 1상을 진행하는 사례가 있지만, 아직 유의미한 효용성을 증명한 사례는 없다.
[Cover Story - part.1] 재생의학의 총아, 줄기세포의 현주소
분화능 뛰어나 여러 질환으로 확장 가능한 ‘배아줄기세포’

가장 분화능이 뛰어난 배아줄기세포는 과거 줄기세포에 걸었던 ‘재생’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줄기세포다. 대다수의 배아줄기세포는 체외수정을 위해 보관한 배아 중 기증받은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다. 1998년 제임스 톰슨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교수가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톰슨 교수는 추출한 배아줄기세포를 망막세포, 신경세포, 췌장세포로 각각 분화했다. 그리고 각각 미국의 오카타테라퓨틱스·차바이오텍, 블루락테라퓨틱스, 바이어사이트 등의 바이오텍이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시도했다. 그 결과 임상 1상에서 망막세포로 분화시킨 배아줄기세포를 이식한 망막질환 실험자는 시력이 개선되고 2년 이상 유지됐다. 이런 결과를 앞세워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여러 바이오텍이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을 이전하거나 인수합병되기도 했
다. 실제 오카타테라퓨틱스는 2014년 일본의 글로벌 제약사인 아스텔라스에 3억7900만 달러(약 4197억 원)에 인수됐다.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또 다른 방법은 황우석 박사가 연구하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방법이다. 핵을 제거한 난자에 환자의 체세포 핵을 이식해 일종의 융합된 배아를 만드는 방식이다. 환자 맞춤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술 구현이 매우 어려운 방법이다. 하지만 2013년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대 교수팀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동률 차의과학대 교수팀이 2015년 체세포 복제 배아의 생성을 억제하는 효소와 이 효소의 기능을 억제할 수 있는 인자를 발굴해 1~2%에 불과하던 성공률을 3배 이상인 7%대로 향상시켰다. 현재 황반변성 등 망막 질환이 있는 환자의 체세포로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를 만들어 세계 최초로 연구자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글 강현구 차병원그룹 종합연구원 R&D 전략기획실장,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