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이 사상 처음으로 1700조원을 넘어섰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가부채는 1743조6000억원이었다. 국민 1인당 1410만원꼴이다. 2018년 1683조4000억원보다 60조2000억원(3.6%) 늘어난 것이다. 국가부채는 중앙·지방정부의 채무에 공무원·군인 등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액의 현재가치(연금충당부채)까지 더한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불어난 국가부채의 84.6%가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한 국채 증가(50조9000억원) 탓이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운 정부가 재정 여력은 아랑곳 않고 ‘퍼주기 복지’를 해온 결과다. 올 들어 ‘코로나 사태’까지 터져 돈 쓸 곳이 더 늘어난 만큼 국가부채가 얼마나 급증할지 가늠조차 어렵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도 4·15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여야의 포퓰리즘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당초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만 긴급재난지원금으로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차라리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씩을 나눠주자’고 제안하자,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수십만원씩의 재난지원금 지원을 앞다퉈 약속하고 있다. 급기야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지 못한 경기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왜 우리 지자체는 아무 얘기가 없느냐” “재정이 부족해 어렵다는 변명을 할 거면 시장직 내려놔라”는 식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 사이에 ‘공짜 바이러스’가 확산하다 보니 총선 판에도 ‘묻지마 매표(買票)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연간 수백조원이 필요한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하는가 하면 수십조원의 세금감면과 지역 투자를 장담하고 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총선에 출마한 주요 정당 후보자 680여 명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 이를 모두 이행하려면 약 4400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정부 예산의 8배가 넘는다.

이런 판국이니 “대부분의 정당이 국가혁명배당금당을 닮아가고 있다”(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는 비판이 나왔다. 허경영 총재가 이끄는 이 당은 1인당 월 150만원의 배당금 지급을 공약한 바 있다. 여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돈을 뿌려대고, 국민은 그 달콤함에 눈이 먼다면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거덜 난 그리스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도 없다.

20여 년 전 외환위기 때를 돌이켜보자. 나라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맸고, 기업·금융·노동·공공 등 4대 부문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했다. 국민들은 정부에 손을 벌리기는커녕 장롱 속 금붙이를 모아 나라 곳간을 채웠다.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산다’는 공동체 의식과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던 외환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국가의 미래야 어찌되든 정권만 차지하면 된다는 정치권의 매표 경쟁, 그들이 뿌리는 돈에 취해버린 국민…. 요즘 벌어지는 광경들을 보면 코로나 위기뿐 아니라 앞으로 닥칠 수많은 위기를 우리가 극복해낼 수 있을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