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 성악가 100명이 한국의 대표 가곡 100곡을 한 곡씩 릴레이로 부른다. 1919년 발표된 홍난파의 ‘봉선화’를 시초로 한 ‘한국 가곡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 가곡의 부흥을 꾀하는 무대에서다.마포문화재단은 오는 9월 20일부터 사흘간 서울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100인의 성악가가 부르는 100곡의 한국 가곡 르네상스’ 공연을 펼친다. 이 재단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동네 클래식’을 표방하며 올해 4회째 여는 ‘엠팻(M-PAT) 클래식음악축제’의 정점을 찍을 무대다. 5회 공연으로 구성해 회당 20명의 성악가가 한 명씩 차례로 무대에 올라 각기 다른 20곡의 가곡을 들려준다. 5회 공연을 모두 관람하면 대표적인 우리 가곡 100곡을 전부 감상할 수 있다.국립오페라단 단장을 지낸 바리톤 박수길을 비롯해 테너 안형일, 임정근 등 원로와 소프라노 박정원,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강무림, 바리톤 고성현, 베이스 김요한 등 내로라하는 성악가가 총출동한다. 이창기 마포문화재단 대표는 “성악가 100인은 한국 가곡 음반을 취입한 경력이 있거나 한국 가곡에 애정과 관심이 많은 성악가를 중심으로 공연 시기를 조정해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100곡의 노래는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부터 ‘남촌’ ‘선구자’ ‘고향 생각’ ‘진달래꽃’ 등 귀에 익은 한국 가곡 80곡과 현대 창작 가곡 20곡으로 구성했다. 박수길 전 단장은 “장일남의 ‘나그네’, 김연준의 ‘청산에 살리라’, 김동진의 ‘수선화’ 중 한 곡을 부르고 싶다고 신청했는데 어떤 곡을 부르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물결에 밀려 많은 사람의 관심에서 멀어진 가곡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렇게 신선한 기획으로 함께 우리 가곡을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돼 반갑다”고 했다.매회 마지막엔 ‘봉선화’를 그날의 출연자 전원과 관객이 함께 부른다. ‘봉선화’는 당시 유행하던 창가와 같은 4·4조의 노랫말을 지녔지만 창가를 뛰어넘는 음악성과 특유의 감수성으로 근대 가곡 1호로 꼽힌다. ‘한국가곡 르네상스’ 추진위원을 맡은 바리톤 우주호는 “200석 규모 소극장에서 1인 1곡씩 독창하며 무대가 계속 전환되는 형식이어서 의사소통과 일정 잡기, 곡 배분 등이 쉽지 않은 작업”이라며 “그럼에도 한국 가곡의 예술적 가치와 민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의의를 되새기는 차원에서 의미가 큰 무대”라고 말했다. 공연은 다음달 초 엠팻 축제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아 무료로 진행한다.엠팻 축제는 9월 3일부터 10월 24일까지 약 50일간 마포구 일대에서 열린다. ‘한국가곡 르네상스’와 함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협연 무대를 선보일 개막 공연(9월 3일, 아트홀맥)과 로마 국립예술원 출신의 젊은 연출가 이회수가 무대화하는 야외 오페라 ‘마술피리’(9월 6~7일, 월드컵공원 수변 무대)도 기대를 모은다. ‘마술피리’에서는 소프라노 최윤정이 파미나, 테너 김성현이 타미노를 연기한다. 코리아쿱오케스트라(지휘 구모영), 그란데오페라합창단(지휘 이희성)이 함께한다. 개막 공연의 관람료는 1만원, 오페라는 3000원이다.이창기 대표는 “지난해까지는 무료 공연이 많았지만 예약을 해놓고 안 오는 ‘노쇼’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관람료라도 받는 것”이라며 “공연장뿐 아니라 시장과 공원, 학교와 교회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고 장소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소극장 무대 자체가 하나의 사회와 시대가 됐다. 뛰어난 무대 구성과 배치로 극 속 사회와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모습을 한번에 그려냈다.지난 8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플레이맥에서 막을 올린 연극 ‘후산부, 동구씨’ 얘기다. 황이선 연출의 작품으로 배우 김대진, 오민석, 안영주, 윤광희, 박영기, 문병주, 이인석 등이 출연한다.극은 1982년 실제 일어난 태백 탄광 붕괴 사건을 재구성했다. 희락이란 작은 마을에서 4명의 광부가 무너진 탄광에 갇힌다. 20일간 간절하게 구조를 기다리는데, 처음엔 노래도 부르고 서로를 격려하지만 점차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한 탄광 밖 사회 권력자들의 모습도 함께 그린다.이 작품은 무엇보다 무대 구성이 독특하다. 중앙에는 무너진 탄광 안 광부들을 배치했다. 무대 맨 뒤 위쪽엔 구조 책임을 진 공무원 등이 얼굴만 빼꼼히 내민다. 구조를 애타게 기다리는 광부들의 모습과 서로 쓸데없는 말만 쏟아내며 책임 소재를 따지기만 하는 공무원의 모습이 한 무대에 중첩되는 방식이다.무대 왼쪽에선 극 초반부터 줄곧 4명의 악사가 장구, 꽹과리, 북 등을 두들겼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효과음을 내기도 해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역할도 했다. 악사들은 또 올림픽 뉴스, 탄광 붕괴 뉴스를 전하는 앵커의 목소리를 내며 당시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함께 표현해낸다.극한의 상황을 해학 넘치는 대사와 율동으로 이끌어 간 점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객석에선 연신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이 서툴고 미흡한 막내 광부란 뜻의 ‘후산부’ 동구를 포함해 4명의 광부는 힘든 노동에도 재밌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무너진 탄광 안에서도 따뜻한 인간미가 돋보였다. 결국 처절하게 방치되며 매우 혼란스러워하는데 이런 두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됐다.다만 동구의 감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한없이 맑고 순진하던 동구는 선배 광부의 죽음 때문에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 감정의 변화가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에 해당하는 만큼 좀 더 정교하게 그려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오는 22일까지.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