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회삿돈 500억여원을 빼돌리고 이를 유흥비로 탕진한 광고대행사 직원이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 조병구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모씨(51)에게 징역 12년에 벌금 150억원을 20일 선고했다. 임씨는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3년에 걸쳐 일당 1500만원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된다.

임씨는 입사 4년차인 1999년, 실수로 거래처에 대금을 더 많이 지급한 뒤 이를 무마하려고 사내 회계감사시스템에 거래처에 채무가 있었다고 허위 입력했다. 이후 임씨가 돈을 채워넣지 않았지만 회사는 대금이 초과 지급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자 임씨는 같은 수법으로 회계시스템에 가짜 채무를 만든 뒤 돈을 갚는 것처럼 꾸며 회삿돈을 자신의 계좌로 빼돌렸다. 이렇게 가져간 돈이 2000년 2월 300만원을 시작으로 지난 4월까지 총 2022회에 걸쳐 502억8000만원에 달했다. 그는 횡령한 돈으로 한 달 방값이 900만원 넘는 서울 강남 고급호텔에서 지내며, 유흥주점에서 500만원짜리 술을 마시고, 100만원짜리 수표를 팁으로 쓴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는 5월 감사 과정에서 임씨의 횡령을 발견하고 추궁에 나섰다. 잠적하려던 임씨는 해외 도피에 실패하고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그에게 환수한 돈은 피해금액의 1.7%인 8억원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임씨의 범행은 건전하게 운영돼야 할 회사 시스템의 신뢰를 위협한 범죄로 단순 횡령범행으로 치부할 수 없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임씨는 벌금 150억원을 선고받았지만 이를 3년간 일당 약 1500만원의 ‘황제 노역’으로 갚을 수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형법에 따르면 벌금 50억원 이상이면 1000일(통상 3년) 이상의 노역장 유치기간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벌금형을 선고받은 자가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장에 유치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