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0/40'展 했던 양국 작가들, 이태원서 '50/50'으로 재회
릴레이 퍼포먼스 후 전시…"한일 '커뮤니언' 무대 되길 희망'
리움 지척 '다세대 아트 싸롱' 개관행사 겸해
14년 만에 다시 만난 한일 미술가들 "마음에서 마음으로"
24일 용산구 한남동의 한 연립주택 지하. 오자와 쓰요시가 가방에서 돌 하나를 꺼냈다.

이수경이 이 돌을 건네받아 흰 수건 위에 올려놓았다.

구석으로 향한 이수경은 등을 돌린 채 바닥에 앉았다.

한참 뒤 일어난 이수경이 오자와 쓰요시에게 수건 보자기를 다시 건네며 속삭였다.

"선물입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오자와 쓰요시가 조심스레 보자기를 펼치자 '금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24K 금박을 입힌 돌은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작업을 떠올리게 했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금으로 이어붙인 '번역된 도자기'는 제작 과정 자체가 치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오자와 쓰요시는 "도쿄에서 주먹만 한 돌을 갖다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이수경으로부터 받았다"면서 "집 마당에서 적당한 돌을 주웠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기르던 고양이 무덤 앞이라 각별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난 한일 미술가들 "마음에서 마음으로"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로 명명된 이수경 퍼포먼스는 이날 이곳에서 개막한 한일 교류전 '50/50' 일환이었다.

'50/50'은 2005년 한일교류 40주년을 맞아 대안공간 루프에서 개최된 '40/40'전을 잇는다.

'40/40'에서는 1960년대에 태어나 당시 40대였던 양국 예술가 12명이 24시간 동안 릴레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들은 이제 50대가 됐다.

한일을 넘어선 국제적 인지도의 작가로 거듭났다.

전시 제목을 '50/50'으로 바꿔 단 이유다.

50대 50은 두 국가 간 평등을 뜻하기도 한다.

서진석·양지윤·히토미 하세가와 기획자와 작가들이 전시를 한창 준비하던 지난여름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였다.

히토미 하세가와는 이날 간담회에서 "'50/50'은 일종의 무대"라면서 "무대가 관객과 예술가를 만나게 하고 일종의 커뮤니언(Communion)을 형성하듯이 이번 전시가 작가와 관객, 일본과 한국의 커뮤니언을 구현할 장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난 한일 미술가들 "마음에서 마음으로"
'50/50'은 '40/40'과 마찬가지로 릴레이 퍼포먼스와 전시로 구성된다.

일본에서는 마츠카게 히로유키, 오자와 쓰요시, 오이와 오스카, 파르코 키노시타, 아리마 스미히사가, 한국에서는 김홍석, 함경아, 전준호, 정연두, 이용백이 참여했다.

14년 전과 비교해 한국 작가들만 일부 바뀌었다.

정연두는 상대 말을 전혀 모르는 20대 한국인, 일본인 여성과 인공지능(AI) 번역기가 함께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정연두는 리허설 때 AI가 '우익'을 '오이'로 알아들었다는 일화를 전하면서 "상당히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50/50'은 '다세대 아트 싸롱' 개관 행사를 겸한다.

15가구가 살았던 연립주택은 개보수를 거쳐 갤러리와 출판사, 미니 영화관 등 다양한 예술공간으로 바뀌었다.

'개점휴업' 상태이긴 하지만 지척의 삼성미술관 리움도 '다세대 아트 싸롱'에 더 눈길이 가게 하는 이유다.

이날 현장을 찾은 김홍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은 "리움이 들어오면서 (이태원 일대 미술에) 불이 붙었다가 꺼지려는 것 같았는데 싸롱 개관으로 다시 '활활' 탈 것 같다"고 덕담했다.

14년 만에 다시 만난 한일 미술가들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