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벼랑 끝 몰려 호르무즈해협 봉쇄 땐 유가 250弗 갈수도"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봉쇄에 이란과 중국, 터키가 반발하고 있다. 이란은 세계 원유 수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위협했다. 중국과 터키는 미국의 조치를 “일방적”이라고 비난하며 미국의 ‘이란 최대 압박 작전’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리레자 탕시리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사령관은 22일(현지시간)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해협을 봉쇄하겠다”며 “적이 위협하면 이란 영해를 방어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그동안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터키 등 8개국에 대해 예외적으로 인정하던 이란산 원유 수입을 다음달 3일부터 전면 금지하기로 한 데 대한 반격이다.

"이란, 벼랑 끝 몰려 호르무즈해협 봉쇄 땐 유가 250弗 갈수도"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최대 원유 수출로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중동 산유국의 원유 수출이 대부분 이곳을 통해 이뤄진다. 하루 원유 수송량은 1700만 배럴로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30%에 달한다. 해협의 가장 좁은 폭은 34㎞에 불과하다.

이란의 위협대로 호르무즈해협이 차단되면 세계 원유 공급에 일대 혼란이 초래되면서 국제 유가가 폭등할 게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이 지난해 5월 이란핵협정을 탈퇴한 뒤 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시장에선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250달러까지 뛸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국제 유가는 미국의 제재가 발표되자 일제히 2~3%가량 올랐으며 23일 장외시장에서도 소폭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실행에 옮긴 적은 지금껏 단 한번도 없다. 호르무즈해협의 제해권을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이 일시적으로 해협을 봉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막강한 미국의 군사력에 맞서 계속 해협을 장악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 미국과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란 정권 자체가 붕괴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게다가 유럽과 아시아까지 모두 적으로 돌릴 우려도 있다.

그렇다고 이란이 ‘생명줄’과 같은 원유 수출이 전면 통제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란 타스님뉴스는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이 제재 유예를 연장하든 말든 이란의 원유 수출이 ‘0’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은 친(親)이란 국가들이 미국의 조치에 균열을 내길 기대하는 눈치다. 터키는 이미 미국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22일 “이란산 원유 수입에 대한 제재 예외 조치를 종료한다는 미국의 결정은 지역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일방적 제재와 지역 외교 방향을 강요하는 걸 거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미국의 일방적 제재와 자국법을 근거로 한 제3국 제재를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며 “중국과 이란 간 협력은 투명하고 합법적이므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란의 하루 원유 수출량은 100만 배럴가량이다. 중국과 터키가 은밀하게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면 미국의 이란 제재는 유명무실해진다. 지난해 미국이 이란 제재를 복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터키의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각각 하루 69만 배럴과 18만 배럴에 달했다. 하지만 중국과 터키가 미국의 제재를 무릅쓰고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중국은 무역협상이 걸려 있어 미국과 대놓고 척을 질 상황이 아니다.

사우디 등 친미 국가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백악관은 이란산 원유 수출 전면 봉쇄 조치를 발표하면서 사우디와 UAE 등이 이란의 공백을 메울 것이라고 밝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는 현재 하루 120만 배럴 감산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오는 6월 OPEC 회의에서 감산 조치를 중단하면 국제 원유시장에서 이란산 원유가 사라진 공백을 상쇄할 수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