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주주 관여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행동주의’ 공모펀드가 올 들어 양호한 성적을 내면서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들 펀드는 무차별적인 경영 간섭으로 단기 차익을 노리는 ‘기업사냥꾼’ 헤지펀드와 달리 우호적이고 장기적인 주주 관여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률 높이기를 추구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주 환원 정책에 대한 무관심 등으로 인해 저평가된 기업이 여전히 적지 않은 만큼 이들 펀드가 향후 수익률을 높일 여지가 충분할 것으로 예상했다.
'착한 행동주의' 공모펀드 통했나
KB·한국밸류, 나란히 10% 돌파

16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대표 행동주의 공모펀드인 ‘KB주주가치포커스’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15.08%에 달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운용 중인 ‘한국밸류10년투자주주행복’과 ‘미래에셋좋은기업ESG’도 연초 이후 수익률이 각각 10.81%, 5.23%를 기록했다.

이들 펀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회사 측에 요구하고 있다. KB자산운용은 지난해부터 컴투스, 골프존, 광주신세계, 넥스트아이, 효성티앤씨, KMH, 인선이앤티 등 총 7개 기업에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역시 작년 5월 이후 KISCO홀딩스, 태광산업, 넥센, 세방, 영원무역홀딩스 등 5개 기업에 주주 서한을 보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는 “주주 가치를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한 기관투자가의 적극적인 관여 활동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며 “기업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큰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펀드는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헤지펀드와도 차별화된다는 게 운용사 측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펀더멘털이 뛰어나지만 기업 지배구조나 주주 환원 정책이 미흡해 저평가된 종목을 발굴한다는 점에서 ‘가치투자’와도 맥을 함께한다”며 “단기 차익을 노리고 현 경영진을 무작정 공격하기보다 회사와의 장기적인 상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헤지펀드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이들 펀드가 그동안 가치주에 투자해왔다는 점에서 최근 고수익이 연초 이후 이어진 주식시장 활황세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KB주주가치포커스’에는 휠라코리아, 메지온, 메리츠화재 등 올 들어 급등한 종목이 다수 담겨 있다. 정용현 KB자산운용 밸류운용1팀장은 “보유 상위 종목들이 연초보다 많이 올라 전체적으로 펀드 수익률이 개선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골프존, 효성, 광주신세계 등 기업은 그동안 주주 관여 활동을 통해 기업 가치가 올라간 측면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운용사와 회사 간 밀당이 핵심”

시장에서는 행동주의 공모펀드의 좋은 성적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국내 상장 기업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주주친화 정책에 둔감한 만큼 주주 관여로 가치를 높일 여지가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관계자는 “완성된 주주친화 정책을 100으로 놓는다면 현재까지 진척도는 30에 불과한 상황”이라며 “개선 작업이 2~3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공모펀드는 운용사와 회사 대주주 간 밀당이 핵심”이라며 “이런 과정에서 기업의 주주 가치 제고 활동을 적극 유도하고 국내 자본시장이 한 단계 올라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