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국인 투자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제임스 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의 의견을 듣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국인 투자 기업인과의 대화’ 행사에 참석해 제임스 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대표의 의견을 듣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규제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달라.” “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이 필요하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환영하지만 유연성이 필요하다.”

주한 외국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28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경영 환경과 관련해 다양한 어려움을 쏟아냈다. 이들은 한국의 경영 및 투자환경을 높이 평가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각종 규제에 대해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날 문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외국인 투자기업인과의 간담회에는 미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 영국 등 13개국에서 56명의 CEO가 참석했다.

“한국서 경영한다는 것은 도전적”

외국 기업 CEO들은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따른 노동시장의 유연성 부족과 각종 규제를 경영 및 투자애로 사항으로 꼽았다. 잉그리드 드렉셀 독일상공회의소 회장은 규제 축소와 더불어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영을 건의했다. 드렉셀 회장은 “기본적으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환영한다”면서도 “다만 디지털 분야는 노동시간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유연한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기존 3개월이었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법 개정 후 상황을 모니터링해 보완해 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인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핀테크(금융기술) 사업의 우호적 환경 조성을 위해 글로벌 스탠더드가 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패트릭 윤 비자인터내셔날 아시아퍼시픽코리아 사장은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핀테크 사업에 좋은 환경”이라며 “하지만 규제에서 한국과 글로벌 기준이 달라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와 관련, “적극 공감한다”고 답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규제개혁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당부하기도 했다.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은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을 적극 지지한다”면서도 “다만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등 금융분야에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데이비드 럭 유나이티드항공 한국지사장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5%만 관광산업에 지원하고 있다”며 혁신적 일자리 창출을 위해 관광산업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리야마 도모유키 서울재팬클럽 이사장은 한·일 관계 악화로 인한 양국 간 교류 감소 등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한국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감한 한·일관계 문제가 나오자 문 대통령이 답변을 자청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적 교류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며 “이미 한 해에 양국을 오가는 인원이 1000만 명에 이른다. 이런 인적 교류가 민간영역으로 확대돼 기업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근 한·일 간 정치적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으며 양국 경제계가 모두 피해를 우려하는 지적이 나오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를 해소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준비 중”이라며 “최근 미세먼지 범국가기구를 만들었고,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 “한반도 평화경제는 매력적인 시장”

문 대통령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외국 기업도 한국에 투자하면 우리 경제 발전과 함께하는 우리 기업”이라며 “우리는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 평화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 될 것”이라며 “평화경제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해 달라”고 언급해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했다.

이번 행사는 경제계의 현장 목소리를 청취하기 위해 올초부터 이어온 문 대통령의 경제 행보 일환으로 마련됐다.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해온 외국인 투자 기업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격의 없는 소통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지정학적 위험이 현저히 줄었다”며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중국·일본보다 높은 역대 최고 등급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가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CDS 프리미엄이 2007년 10월 이후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과 지난해 수출 6000억달러 돌파, 10년 연속 무역수지 흑자 달성 등의 수치를 언급하면서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이 견조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