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달 30일 기준금리 인상을 사실상 중단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통화정책 완화에 나서고 있다. 2015년 말 Fed의 금리 인상을 신호로 확장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졌던 세계 경기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확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데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통화정책을 완화하려는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과 관련해 “Fed의 우려를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美 이어 호주·인도·영국…세계 중앙은행들 잇따라 '긴축 카드' 포기
인도 중앙은행(RBI)은 지난 7일 시장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연 6.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인도는 작년 6월과 8월에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며 금리를 0.25%씩 두 차례 올렸다.

하지만 6개월 만에 방향을 바꿨다. 경기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RBI는 “세계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무역분쟁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성장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식료품 등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우려했던 만큼 강하지 않은 점도 금리정책을 전환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호주 중앙은행(RBA)은 8일 통화정책 결정회의 후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8회계연도(작년 7월~올해 6월)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25%에서 2.5%로 뚝 떨어뜨렸다. 기준금리는 2016년 8월 이후 유지해온 연 1.5%를 유지했지만 다음 회의에선 인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필립 로위 RBA 총재는 “세계 경제 리스크가 커졌고 호주 주택시장 경기가 가라앉는 등 여러 위험이 누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 인하와 인상 가능성이 엇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벤 어디 캐피털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둔화로 호주 중앙은행이 갈수록 더 비둘기적(통화완화적)으로 바뀔 것”이라며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를 연 1.0%로 떨어뜨릴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영국은행(BOE)도 7일 금리를 동결(연 0.75%)했다. BOE는 작년 말까지만 해도 긴축을 지속해야 한다는 기조였다. 하지만 이날 통화정책 회의 후 마크 카니 BOE 총재는 브렉시트 불확실성을 거론하며 금리 인상 카드를 폐기했음을 시사했다.

태국, 필리핀, 브라질, 멕시코 중앙은행도 각각 이달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물가상승 위험은 줄어들고 경기 부양 필요성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사벨 마테오스 이라고 블랙록투자자문 전략가는 작년 4분기에 미·중 무역분쟁이 터졌고 이후 시장이 크게 흔들린 점을 들어 “브레이크(긴축정책)에서 발을 떼는 중앙은행들의 행동에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스티븐 킹 HSBC 고문은 중앙은행들이 긴축을 밀어붙이지 못하는 배경에 부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의 국가가 금융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떨어뜨리지 못했다”며 “부채가 위기와 관련돼 있다면 세계 경제는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