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전사' 된 천안 포도 농민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천안포도수출유통센터 소속 50개 농가
2014년 FTA로 수입제품 늘어나자
공공기관 통하지 않고 직접 수출길 모색
신선도 무기로 까다로운 中시장 뚫고
1년 농사과정 보여주며 캐나다 공략
작년 美·中·캐나다·뉴질랜드에 75t 수출
2014년 FTA로 수입제품 늘어나자
공공기관 통하지 않고 직접 수출길 모색
신선도 무기로 까다로운 中시장 뚫고
1년 농사과정 보여주며 캐나다 공략
작년 美·中·캐나다·뉴질랜드에 75t 수출
2017년 말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농산물 유통회사 오피 본사를 일곱 명의 한국 중년 남성들이 방문했다. 박용하 봉도월포도원 대표(54) 등 충남 천안 성거읍 일대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었다. 오피 측에선 월트 브리든 부회장이 나왔다. 계약 단계가 아닌 첫 만남에서 부회장급 임원이 나오는 건 드문 일이다. 1858년 설립된 오피는 캐나다 최대 규모의 농산물 전문 유통회사로 세계 20여 개국에서 농산물 100여 종을 사들여 캐나다와 미국의 대형마트 등에 공급하고 있다.
브리든 부회장은 “보통 외국 농민들이 찾아올 때 팔고 싶은 농산물만 갖고 찾아온다”며 “계약도 안 맺은 상태에서 1년 동안의 모든 생산 과정을 사진과 함께 영어로 꾸준히 보내온 건 당신들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와 그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천안포도수출유통센터에 속한 농민들은 한국 농업계에선 보기 드문 ‘수출 전사’로 꼽힌다. 공공기관 등을 통하지 않고 농민들이 직접 수출길을 뚫은 점에서 그렇다. 지난해 이 센터가 미국, 캐나다, 중국, 뉴질랜드 4개국에 수출한 포도는 75t에 달한다. 천안포도영농조합 소속 50여 개 농가가 연간 생산하는 물량의 10%를 넘는다. 한국보다 포도 생산량이 훨씬 많은 이들 국가에 농민이 주축이 돼 대량 수출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들이 수출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한 건 2014년 무렵이다. 천안시 성거읍과 입장면은 국내 거봉 포도의 주산지다. 칠레,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수입 포도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산 포도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전국 포도농 모임인 한국포도영농조합 대표도 함께 맡고 있는 박 대표는 ‘수출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포도를 수출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어요. 포도가 안 나는 나라도 아니고 우리보다 포도를 더 많이, 더 잘 키우는 나라에 포도를 수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였죠.”
박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농산물 수출은 농가에 다른 이득도 생깁니다. 국내 유통물량이 줄어들면서 그만큼 국내 가격이 안정되는 겁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은 공산물과 달라 유통물량이 약간만 공급 초과해도 가격이 절반 이하로 폭락하는 구조입니다.” 박 대표와 천안 농부들은 해외 시장 조사에 직접 나섰다. 중국 광저우 농산물 도매시장을 비롯해 주요 과일 유통시장 여섯 곳을 연이어 찾아갔다. “중국에선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안 포도를 가까운 평택항을 통해 상하이로 보내는 게 중국 내륙에서 운송하는 것보다 물류비가 적게 들겠더라고요. 중국에선 포도를 주로 서부 내륙에서 키워요. 이 포도를 트럭으로 1주일 넘게 운반해서 광저우 도매시장에 갖다 놓은 뒤 다시 상하이 같은 대도시 마트로 팔더라고요. 천안 포도는 하루, 이틀이면 상하이 마트에 갖다 놓을 수 있으니까 신선도나 물류비 면에서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수출을 미리 준비한 터라 중국의 한국 포도 수입 허용 직후인 2015년 8월 바로 25t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박 대표와 농민들은 한번 뚫은 수출을 지속하기 위해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저장시설과 선별시설을 갖춘 포도수출유통센터는 그런 노력을 통해 갖춰졌다. “중국이라고 하면 농산물 검역기준이 선진국보다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수출하고 있는 미국, 중국, 캐나다, 뉴질랜드 네 나라 중 검역기준이 가장 높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으로 눈을 돌린 건 2017년 중국의 한국 기업에 대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 시장의 대안으로 다들 동남아시아 시장을 거론할 때 천안 농민들은 북미 시장을 떠올렸다. 한국의 다른 과수 농가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도시를 돌며 포도 품종별 가격을 일일이 조사했다. 이어 오피를 통해 수출시장을 뚫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자신들이 농사짓는 모든 과정을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사진과 함께 영문으로 작성해 오피에 보냈다. 박 대표는 “그쪽에서 읽든 말든 상관없이 1년 동안 꾸준하게 보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포도 농사에 뛰어든 것은 1994년이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건설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과장이던 1994년 농사를 짓던 부모와 형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게 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현재는 2만6400㎡(약 8000평) 규모 비닐하우스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다. 25년간 포도 농사만 지으면서 농민으로서는 드물게 단독으로 수출길을 뚫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농촌진흥청이 뽑은 ‘2018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선정됐다.
천안=FARM 홍선표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447285741
브리든 부회장은 “보통 외국 농민들이 찾아올 때 팔고 싶은 농산물만 갖고 찾아온다”며 “계약도 안 맺은 상태에서 1년 동안의 모든 생산 과정을 사진과 함께 영어로 꾸준히 보내온 건 당신들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와 그가 센터장을 맡고 있는 천안포도수출유통센터에 속한 농민들은 한국 농업계에선 보기 드문 ‘수출 전사’로 꼽힌다. 공공기관 등을 통하지 않고 농민들이 직접 수출길을 뚫은 점에서 그렇다. 지난해 이 센터가 미국, 캐나다, 중국, 뉴질랜드 4개국에 수출한 포도는 75t에 달한다. 천안포도영농조합 소속 50여 개 농가가 연간 생산하는 물량의 10%를 넘는다. 한국보다 포도 생산량이 훨씬 많은 이들 국가에 농민이 주축이 돼 대량 수출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들이 수출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한 건 2014년 무렵이다. 천안시 성거읍과 입장면은 국내 거봉 포도의 주산지다. 칠레, 미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수입 포도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산 포도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전국 포도농 모임인 한국포도영농조합 대표도 함께 맡고 있는 박 대표는 ‘수출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포도를 수출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어요. 포도가 안 나는 나라도 아니고 우리보다 포도를 더 많이, 더 잘 키우는 나라에 포도를 수출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거였죠.”
박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농산물 수출은 농가에 다른 이득도 생깁니다. 국내 유통물량이 줄어들면서 그만큼 국내 가격이 안정되는 겁니다. 특히 농산물 가격은 공산물과 달라 유통물량이 약간만 공급 초과해도 가격이 절반 이하로 폭락하는 구조입니다.” 박 대표와 천안 농부들은 해외 시장 조사에 직접 나섰다. 중국 광저우 농산물 도매시장을 비롯해 주요 과일 유통시장 여섯 곳을 연이어 찾아갔다. “중국에선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안 포도를 가까운 평택항을 통해 상하이로 보내는 게 중국 내륙에서 운송하는 것보다 물류비가 적게 들겠더라고요. 중국에선 포도를 주로 서부 내륙에서 키워요. 이 포도를 트럭으로 1주일 넘게 운반해서 광저우 도매시장에 갖다 놓은 뒤 다시 상하이 같은 대도시 마트로 팔더라고요. 천안 포도는 하루, 이틀이면 상하이 마트에 갖다 놓을 수 있으니까 신선도나 물류비 면에서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수출을 미리 준비한 터라 중국의 한국 포도 수입 허용 직후인 2015년 8월 바로 25t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박 대표와 농민들은 한번 뚫은 수출을 지속하기 위해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저장시설과 선별시설을 갖춘 포도수출유통센터는 그런 노력을 통해 갖춰졌다. “중국이라고 하면 농산물 검역기준이 선진국보다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수출하고 있는 미국, 중국, 캐나다, 뉴질랜드 네 나라 중 검역기준이 가장 높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으로 눈을 돌린 건 2017년 중국의 한국 기업에 대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 시장의 대안으로 다들 동남아시아 시장을 거론할 때 천안 농민들은 북미 시장을 떠올렸다. 한국의 다른 과수 농가들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과 캐나다의 주요 도시를 돌며 포도 품종별 가격을 일일이 조사했다. 이어 오피를 통해 수출시장을 뚫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자신들이 농사짓는 모든 과정을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사진과 함께 영문으로 작성해 오피에 보냈다. 박 대표는 “그쪽에서 읽든 말든 상관없이 1년 동안 꾸준하게 보냈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포도 농사에 뛰어든 것은 1994년이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건설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과장이던 1994년 농사를 짓던 부모와 형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게 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귀농을 결심했다. 현재는 2만6400㎡(약 8000평) 규모 비닐하우스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다. 25년간 포도 농사만 지으면서 농민으로서는 드물게 단독으로 수출길을 뚫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농촌진흥청이 뽑은 ‘2018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으로 선정됐다.
천안=FARM 홍선표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447285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