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측, 성적 0점 처리하고 퇴학 결정
암기장에 전과목 정답 메모
시험지에도 답 외운 흔적
학부모들 "입시제도 구조적 문제"
정시 확대 '목소리' 더 커질 듯
시험 출제자도 ‘유출’ 의견
숙명여고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 수서경찰서는 12일 숙명여고 문제 유출 사건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구속된 A씨와 함께 그의 쌍둥이 딸들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쌍둥이 딸들도 공범으로 봤지만 미성년자인 점 등을 고려, 이들에게는 불구속 기소 의견을 냈다.
경찰은 쌍둥이 자매가 문·이과 전교 1등을 한 2학년 1학기 중간·기말고사뿐 아니라 지난해 1학년 1학기 기말고사와 2학기 중간·기말고사에서도 문제가 유출된 것으로 파악했다. 결정적인 증거로는 정답이 적혀 있는 쌍둥이 동생의 암기장을 꼽았다. 1학년 시험 일부 과목, 2학년 1학기 기말고사의 전 과목 등 총 18과목의 정답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답안 목록을 잘 외우려고 키워드를 만들어둔 흔적도 발견됐다.
쌍둥이가 시험을 치른 시험지에서는 미리 외워둔 정답 목록을 깨알 같은 크기로 적어둔 흔적도 있었다. 쌍둥이 자매는 “채점을 위해 메모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경찰은 “감독관 눈을 피하려고 작은 글씨로 적었을 것”이라며 “정답을 암기장에 적어놓고 외우다가 시험지를 받자마자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직접 시험문제를 출제한 숙명여고의 다른 교사들도 경찰 조사에서 “풀이 과정과 정답이 다른 점 등 때문에 문제 유출이 의심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A씨 부녀와 함께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한 전임 교장과 교감, 정기고사 담당교사 등 3명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은 “이들은 A씨를 정기고사 결재라인에서 배제하지 않은 사실은 있지만, 문제 유출을 알면서 방조했는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시 확대’ 주장 더 커질 듯
숙명여고는 A씨에 대한 파면과 쌍둥이 자매 퇴학 절차에 들어갔다. 숙명여고는 이날 성명을 통해 “본교는 이번 사건을 수사해 온 수사기관 및 그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전 교무부장 자녀들의 성적 0점 처리와 퇴학을 결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으며, 교육감 및 교육청과 협의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A씨에 대한 파면도 징계위원회에 건의하기로 했다.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 강남 지역 학부모들 사이에선 “숙명여고만의 문제겠느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교사와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닌 경우에는 이 같은 일이 적잖게 발생해 왔을 것이란 얘기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고교 2360개 가운데 560개교(23.7%)에서 교직원과 자녀가 같이 재학하고 있다. 해당 교원 수는 1005명, 교원 자녀는 1050명이었다. 교육부는 교사 자녀가 부모와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상피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일부 교육청과 학교가 반발하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이 국내 대입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수시전형의 경우 객관적인 평가 잣대가 없어 ‘깜깜이 전형’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숙명여고에서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되면서 고교 내신에 대한 신뢰도 논란이 재점화됐고, 이로 인해 정시 확대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됐다. 이날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숙명여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건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현행 입시제도 하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발생한 범죄”라며 “과거의 내신 범죄에 대해서도 수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임락근/김동윤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