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영어와 코딩, 미래 세대의 기초체력
1960년대 후반 미국 시애틀 초등학교 육성회에서 어머니 한 분이 우연히 잡지에서 접한 컴퓨터라는 신기한 물건을 화제에 올렸다. 단순한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해 컴퓨터를 한 대 들이자는 아이디어로 발전했고, 자선 바자를 열어 얻은 수익금으로 구입한 초기형 컴퓨터는 인류 문명에 격변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오목과 같은 간단한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들이었던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후일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기 때문이다. 13세에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든 게이츠는 후일 “당시 학생들이 컴퓨터를 접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늘 감사한다”고 회고했다.

시리아 출신 미국 유학생과 미국인 여대생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입양된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와 기계에 관심이 높았던 양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전자회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68년 창간된 기술잡지 ‘더 홀 어스 카탈로그’의 애독자였다. ‘기술이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잡지의 지향점은 후일 애플의 제품 철학으로 발전했다. 일본 규슈에서 가난한 재일동포의 무허가 판자촌에서 태어난 손정의는 어렵게 입학한 명문 고등학교 1학년을 자퇴하고 미국 유학을 떠난 캘리포니아에서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감지하고 소프트뱅크를 창업했다.

1955년생인 게이츠, 잡스, 1957년생 손정의와 동년배인 앨런, 스티브 워즈니악은 정보화 혁명의 주역이 됐다. 한국 정보기술(IT)업계의 대표주자인 네이버, 카카오톡, 엔씨소프트, 넥센 창업자들은 1966~1968년생이다. 인터넷 확산을 배경으로 온라인 쇼핑사업을 시작해 유통산업 전반을 변혁시킨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와 알리바바의 마윈은 1964년 동갑내기다. 이는 단순한 시간적 우연이 아니라 예민한 감수성으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성장기에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변화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개체는 1975년 출시된 역사상 최초의 PC 키트인 ‘알테어’와 1977년 선보인 ‘애플2’였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 10~20대 젊은 세대가 접하는 기술과 습득하는 지식은 2040년대의 개인적 삶과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규정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기성세대는 자녀들의 학업과 취업에 관심이 많지만 특별한 조언을 하기도 어렵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20년 후 미래의 유망한 분야와 직업에 대한 예측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가트렌드의 맥락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갖춰야 할 기초적 역량에 대해 생각해 볼 수는 있다.

20세기 후반부터 진행되는 거대한 변화의 키워드는 디지털과 글로벌이다. 최근 부상하는 기업들은 이런 흐름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그렇다면 개인들도 디지털과 글로벌에 부합하는 기본 역량을 갖추면 출발선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영어와 코딩(컴퓨터 프로그래밍)이다. 21세기에 영어는 외국어가 아니라 글로벌 시대에 정보를 습득하고 타인들과 교류하는 기본 도구다. 나아가 코딩도 기술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소통에 필요한 기본 언어다. 젊은 세대에게 영어와 코딩은 현재의 전공 분야를 바탕으로 미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다. 애플과 HP 고위 임원을 지낸 사티브 차힐은 한국 청년들이 국제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영어와 요즘 세상에서 하나의 언어로 인정받는 코딩을 배우기를 권한다”고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추석에 친지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장래를 화제에 올렸을 것이다. 자녀들이 장성해 유망한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는 모습은 모든 부모의 공통적 바람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으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미래 세대의 유망 분야를 예단하는 것은 무리다. 다만 글로벌과 디지털이라는 메가트렌드를 따라갈 수 있는 영어와 코딩이라는 기초체력의 바탕에서 개인적 적성에 맞는 다양한 분야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조언하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