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미래철도
한국 최초의 철도 노선은 1899년 9월18일 개통된 노량진~제물포 구간의 경인선이다.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 기관차여서 시속 23㎞ 정도의 ‘느림보’였다. 이보다 빠른 디젤기관차는 6·25 전쟁 중인 1951년에 들어왔다. 1972년 전기 기관차가 등장했고, 2004년부터는 KTX 개통으로 시속 300㎞의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

겉보기에는 세계 다섯 번째의 ‘고속철 국가’이지만 그 이면에는 영욕의 역사가 얼룩져 있다. 우선 열차 통행 방식부터 기형적이다. 코레일(옛 철도청)이 운영하는 모든 기차와 서울 지하철 1호선은 좌측통행이다. 서울 지하철 2, 3호선과 5~9호선은 우측통행이다. 4호선은 좌·우를 X자로 교차시킨 ‘꽈배기형’이다.

이는 좌측통행 방식인 영국 철도를 일본이 그대로 들여와 한국에 접목했기 때문이다. 처음 경인선 건설 허가를 받은 것은 미국인 모스였으나 자금난을 겪다가 일본에 부설권을 넘겨줬다. 1905년 완공된 경부선도 미국이 먼저 추진했다가 일본에 넘겼다. 그래서 모든 철도가 좌측통행으로 건설됐다.

1984년 개통된 서울 지하철 2호선부터는 미국 중심의 일명 ‘대륙 방식’인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좌·우측 통행이 섞여 있으면 열차 연결운행에 문제가 생기는 등 어려움이 많지만, 이를 완전히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각종 시설과 신호 시스템 등을 한꺼번에 고치는 데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철도의 날’ 기념일을 ‘경인선 개통일’(9월18일)에서 ‘구한말 철도국 설립일’(6월28일)로 바꾸면서 내세운 명분은 일제 잔재 청산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대로 둔 채 기념일 날짜만 바꾸는 건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철도는 일제 잔재의 틀로만 옭아맬 대상이 아니다. 광복 후 우리 경제와 사회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은 이제 세계를 상대로 고속철 시대의 기술 경쟁을 벌일 만큼 발전했다. 차세대 교통수단으로 꼽히는 자기부상열차와 진공터널형 하이퍼루프(hyperloop) 관련 기술에서도 앞서 가고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자기부상 기술과 진공압축 기술을 융합한 하이퍼루프 모델을 개발해 시속 700㎞ 시험에 성공했다.

한국형 하이퍼튜브가 완성되면 최고 시속 1200㎞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시속 800㎞인 비행기보다 1.5배 빠르다.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유럽까지 몇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다. 다만 미래 철도를 향한 일본·중국·프랑스 등의 ‘기술전쟁’과 선로 궤도폭이 우리와 다른 러시아 철도와의 연계 문제 등은 남은 변수다. 오늘은 경인선이 개통된 지 119년째, 경인선 복선이 완공된 지 53년째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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