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폴 크루그먼 교수의 최저임금 충고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스스로 중도를 지향한다지만 남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학자로 분류한다. 그가 얼마 전 한국에 들른 참에 최저임금 인상 논쟁에 훈수를 뒀다. 미국 주요 도시의 최저임금을 서둘러 시간당 15달러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앞장서온 그다. 그런데 톤이 달랐다.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상대적으로 높다며 생산성은 낮은데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예상 밖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오락가락한 적은 없다. 뉴욕 시애틀 같은 곳은 15달러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앨라배마처럼 생산성이 낮은 곳에 같은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함께 강조해왔다.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앞부분만을 따내 인용해온 탓이다.

미국에선 시애틀에 이어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서부 지역 주요 도시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렸다. 언론들은 인상 여파를 다루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다고 미국 전역이 최저임금으로 난리가 난 건 아니다. 크루그먼 교수가 사례로 든 앨라배마 같은 곳은 다른 나라와 다름없다. 앨라배마 주법에는 아예 최저임금 규정이 없다. 기업들은 연방법상 최저임금 7.25달러를 적용한다. 우리 돈으로 8000원이다. 그것도 권고 수준이다. 미시시피 테네시 등이 그런 주다. 조지아주는 그보다 낮다. 주법상 5.15달러다. 5800원이다.

최저임금의 차이는 생산성에서 비롯된다. 뉴욕의 생산성이 100이면 앨라배마는 65, 조지아는 70 수준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일본도 그렇다. 도쿄의 최저임금은 958엔인데, 오키나와는 736엔이다.

기업들은 여건만 비슷하다면 당연히 이런 지역에 생산 시설을 둔다. 현대자동차가 앨라배마주, 기아자동차가 조지아주에 진출한 이유다. 그런데 이 공장의 생산성은 현대차 울산공장의 두 배다. 생산성은 절반인데 최저임금은 훨씬 높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노동계다.

생산성만 감안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물가 등 생활 여건도 변수다. 근로자의 생활 안정이 최저임금의 가장 중요한 목표여서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식당 고려정의 돌솥비빔밥은 14.95달러지만 애틀랜타의 한일관은 9.95달러다. 캘리포니아와 조지아의 최저임금이 같을 수 없는 이유다.

그뿐인가. 업종별, 사업 규모별로도 최저임금이 달라야 한다. 일본은 업황이 괜찮은 철강업이 871엔인 반면, 경쟁이 치열한 일반소매업은 792엔이다. 영국은 직무 숙련도와 나이에 따라서도 최저임금이 다르다. 최저임금에는 다양한 모든 변수가 적용돼야 하고 포함시켜야 하는 임금의 범위도 넓어야 당연한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주장하는 쪽은 시애틀 사례를 강조한다. 지난해 미국 처음으로 대기업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올렸지만 실업률은 되레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업률 저하는 시애틀에 본사를 둔 대기업의 실적 호조 덕분이다. 저임금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탓에 근무시간이 줄어 오히려 수입이 6% 감소했다. 워싱턴대의 조사 결과다.

그뿐인가. 기업은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 시애틀 호황을 주도해온 아마존은 다른 곳에 제2 본사를 두기로 하고 입지를 물색 중이다. 며칠 전에는 운전기사 130명을 해고했다. 대신 시애틀 최저임금의 4분의 3으로 채용이 가능한 애리조나주로 사업부를 통째로 옮겼다. 타격은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등한 물가도 저소득층에 직격탄이다.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한 저소득 근로자들이 거리로 나앉고 있다. 시정부가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500여 개 대기업에 직원 1인당 275달러의 ‘인두세’를 물리려다 기업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속속 보따리를 싸고 있다.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근로자 소득도 증가한다. 급여부터 올려줘서 일자리도 늘리고 기업이 활력을 얻는 방법은 몇몇 좌파 학자들 강의 노트에나 들어 있는 환상이다. 노동 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꼴찌인 나라다. 그런 나라의 최저임금이 1만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오는 14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마칠 것이라고 한다. ‘노동 귀족’ 근로자위원들에게 끌려다니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위원회다. 이제라도 “최저임금 인상이 늘 좋은 것은 아니니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크루그먼 교수의 충고를 귀담아듣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