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외진단 전문기업 수젠텍이 올해 말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테론 등 5가지 여성호르몬의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모바일용 진단기기를 출시한다. 2016년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이 기기는 블루투스 기능이 탑재돼 측정 결과를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전송할 수 있다. 손미진 수젠텍 대표(사진)는 "사용자가 여성호르몬의 변화를 일상적으로 점검함으로써 배란, 생리, 임신, 폐경 등 여성 건강을 평생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변을 키트에 떨어뜨린 뒤 분석기기에 삽입하면 5분 뒤 결과를 앱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손 대표는 여성호르몬 자가 관리가 가능해지면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난임, 생리불순, 뾰루지 등 여성 건강은 호르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여성이 호르몬 수치가 높아질 때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 등을 제공하면 삶의 질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핵심은 수젠텍이 자체 개발한 소형 분석 시스템이다. 의료기관에서 쓰는 분석기기는 크고 비싸다. 자가 진단기기는 높은 정확도를 확보하면서 작고 싸게 만들어야 한다. 손 대표는 "발광다이오드(LED)·포토다이오드(PD)로 빛을 정밀하게 검출하는 기술과 측정값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적용했다"며 "코인 배터리로 작동할 수 있는 초소형·저전력 분석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수젠텍은 소형 분석 시스템을 2015년 출시한 국내 최초의 디지털 임신·배란 테스트 기기에 활용한 바 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헬스케어는 소모 열량, 운동 시간 등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 스스로 몸 상태를 진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이 시스템을 바탕으로 자가 진단의 영역을 넓히는 게 우리 목표"라고 밝혔다.

수젠텍은 치매·치주질환 진단키트도 개발하고 있다. 치매 진단키트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과, 치주질환 진단키트는 서울대치과병원과 연구 중이다. 치매는 베타아밀로이드와 새로운 바이오마커를 함께 검출해 발병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손 대표는 "임상 자료에 따르면 치매 환자는 초기 후각이 둔감해지는 증상을 겪는다"며 "콧속에서 채취한 검체에 새 바이오마커가 있다"고 했다. 개발 기간은 2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치주질환 진단키트 개발은 침에 치주조직이 괴사할 때 나오는 바이오마커가 함유돼 있다는 연구 결과에 기반한 사업이다. 침에 있는 바이오마커의 농도가 혈액 속 바이오마커의 1000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아직 난관이 많다. 그는 "임플란트 시술을 할 때 치주질환이 있으면 임플란트를 오래 사용할 수 없는데 보통 문진으로 질환 여부를 파악한다"며 "치과 업계에서 수요가 크다"고 말했다.

치아와 잇몸 사이에서 바이오마커를 채취하는 기기와 소규모 치과의원에 적합한 분석 장비를 개발하는 게 관건이다. 올해 서울대치과병원에서 연구자 임상을 시작한다. 개발 기간은 3년으로 잡고 있다.

수젠텍은 LG생명과학,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등 여러 기관에서 체외진단을 연구해온 손미진 대표가 2011년 설립한 회사다. 손 대표는 "업계에서 일하며 체외진단 시장의 추세를 지켜봤는데 이 분야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며 "그러나 회사에서는 이 분야를 주목하지 않아 내가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수젠텍의 대표 제품은 세계 최초의 전자동 멀티플렉스 블로트(BLOT) 시스템이다. 검체 인지, 시약 분주, 흡입, 세척, 주입, 분석 등 체외진단의 모든 과정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유일한 장비다. 지난해 인수한 케이맥바이오가 약 220억원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적용했다. 분석 시간이 2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어든다. 손 대표는 "체외진단 시 필요한 주입, 분주, 흡입 등을 손으로 하면 오류가 생길 위험이 있다"며 "선진국 시장이 원하는 제품은 이 절차를 자동화한 기기"라고 말했다.

그밖에 현장진단(POCT) 기기, 자가진단 기기 등 체외진단과 관련된 모든 범위를 포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체외진단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전 영역에서 잘할 수 있는 기업은 수젠텍뿐"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약 120억원이다. 내년 상반기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과학기술혁신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 대표는 체외진단 시장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은 체외진단 업체의 시가총액이 신약 개발 업체보다 크다"며 "체외진단 산업은 제조업과 함께 가기 때문에 한국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