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지와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사도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
평지와 낮은 구릉이 대부분인 사도에서 바라본 바다 전경.
전남 여수에 있는 사도 갱번(바닷가를 뜻하는 사투리), 썰물의 때가 왔다. 오늘도 사도 어머니들은 갱번 갯바닥에서 갯것을 채취하는 중이다. 어머니 한 분이 고둥과 배말(삿갓조개), 군봇(군부, 딱지조개), 거북손을 따면서 노래를 부른다. 구슬프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남의 것을 빼앗아 사는 것도 아니고 험한 갯바닥을 기어 다니며 갯것을 채취해다 먹고사는데 어째서 어머니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실까. 어째서 어머니는 스스로를 벌레만도 못하다고 비하하실까. 어머니들을 죄인으로 벌레만도 못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못난 자식들은 아프고 또 아프다.

사도, 한반도 최후의 공룡 서식지

[여행의 향기] 8100만년 전 공룡들이 노닐던… 바다 한 가운데 '모래섬'
자주 드나들었지만 사도는 변함없이 편안한 섬이다. 오늘은 뜨끈한 민박집 방안에 앉아 주인 할머니 이야기를 듣는다. 팔순 할머니의 오늘의 법어다. “하루 길을 걸으면 중도 보고 새도 본다.” 세상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도 만나니 사람이나 관계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도 연연하지도 마란 말씀이다. 이런 귀한 깨달음의 말씀을 전수받을 수 있는 곳이 섬 마을 민박이 아니면 또 어디 있을까.
공룡 모형
공룡 모형
백악기 한반도 남부 지역은 공룡왕국이었다. 여수의 섬 사도 인근 섬들 또한 공룡왕국이었다. 연구자들은 몽골지방에 살던 공룡이 사막화로 살 곳이 없어지자 한반도 일대로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사도 일대는 한반도에서도 최후의 공룡 서식지였다. 사도 인근 섬들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은 모두 3546점이다. 이 화석들은 백악기 후기인 6500만~8100만 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것인데 추도에 1759점, 낭도에 962점, 사도에 755점이 남아 있다.
화석으로 남은 공룡 발자국.
화석으로 남은 공룡 발자국.
이 일대 섬들에서 발견된 공룡 발자국 화석이 중요한 것은 육식 공룡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육식 공룡 발자국 화석은 드물다. 게다가 이들 섬에서는 육식 공룡과 초식 공룡 발자국 화석이 골고루 발견돼 그 의미가 더 깊다. 지금까지 발견된 공룡 화석은 뼈, 알, 똥, 발자국 화석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화석들 덕에 지구에서 공룡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살다 갔는지 알 수 있다. 공룡의 섬답게 사도 선착장 입구에서는 거대한 공룡 조형물이 여행자를 압도한다. 백악기로의 여행. 사도라는 타임터널을 통해 우리는 공룡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

사도는 0.36㎢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산이라 이를 만한 고지대가 없고 그저 평지와 낮은 구릉뿐이니 섬이 오랜 세월 물에 잠기지 않고 어떻게 남아 있었을까 신비롭기까지 하다. 지금은 40여 명이 살아가지만 한때는 500여 명의 주민이 살 정도로 융성하던 시절도 있었다. 농토가 없어 전적으로 어업에 의지해 살던 사도 사람들은 1959년 한반도를 강타한 사라호 태풍 때 큰 피해를 입었다. 많은 배가 파손되고 인명 피해도 컸다. 그 이후 많은 사람이 뭍으로 이주해 갔고 오랜 세월 바다가 두려워 어업 활동을 하지 못하고 살아 왔다. 섬은 그렇게 아주 소멸해 버리는 듯했다. 그러다 다시 사도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이 섬의 선주민이었던 공룡 덕분이다. 공룡발자국이 발견되면서 섬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자 사도는 조금씩 생기가 돌고 있다. 이제 트라우마를 벗어난 일부 주민이 다시 어선을 부리기 시작한다. 멸종한 공룡이 사도를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개비, 고둥, 군소 무침 등 토속 음식 풍성

사도는 모세의 기적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해마다 정월, 2월, 4~5월 보름 썰물 때면 사도 인근 바다도 진도 신비의 바닷길처럼 갈라진다. 이때는 사도 주변의 섬들, 사도와 추도, 중도, 장사도, 나끝, 연목, 증도까지 일곱 개의 섬들이 ㄷ자 모양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요즘 들어 사도 주민들은 걱정이 생겼다. 해수면 상승으로 물이 예전처럼 많이 빠지지 않는 까닭이다.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2월 영등사리 때도 바닥이 활짝 드러나지 않는다. 몇 십 년 뒤에는 사도가 가라앉아 버릴까 걱정이 될 정도다. 사도와 추도를 이어주는 길목인 칫등 물도 예전처럼 많이 안 빠진다. 지구 온난화 영향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 바로 섬사람들이다.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섬 여인.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섬 여인.
사도에는 상시로 문을 여는 식당이 없다. 성수기나 예약 손님이 있을 때만 문을 여는 식당이 한 곳 있지만 식사는 민박집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오히려 여행자들에게는 행운이다. 진짜 사도의 토속음식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사도 민박집 밥상에는 조개 미역국과 따개비, 고둥, 군소 무침 등이 올랐다. 많은 반찬 중에서도 주인공은 단연 군봇, 배말 등의 따개비와 고둥 무침이다. 그런데 고둥 무침처럼 귀한 것이 또 있을까. 다른 따개비 종류도 채취부터 쉽지 않지만 고둥은 삶아낸 뒤 일일이 바늘로 알맹이를 다 꺼내야 한다. 고둥 반찬 한 그릇에 담긴 노고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얼마나 긴 시간이 들어 있는가. 고둥이 아니라 귀한 시간을 먹는 것이다. 고둥은 물이 많이 들고 나는 사리 때보다 들고 남이 적은 조금 물때에 많이 나온다. “기나 고둥이나 조금 때 많이 나와요, 희한하게.”
고둥무침
고둥무침
고둥의 종류도 많다. 꼭지에 따깽이(뚜껑)가 있는 따깽이 고둥, 감생이 고둥, 방석 따리 고둥, 다사리 고둥 등등. 배말은 쫄깃하고 군봇은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배말과 군봇 등은 숙회로 먹기도 하지만 무침이라야 제 맛이다. 음식들이 다 맛있다. 한꺼번에 먹기 아까울 정도다. 숨겨 뒀다가 하나씩 꺼내 먹으면 좋을 것 같은 보물 밥상. 주인 할머니에게 비결을 물으니 답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성이지 뭐.” 일전에 KBS 1박2일 팀이 사도에 왔다. 밥 차가 들어왔는데 남은 음식을 나눠 먹으라고 경로당에 가져다 줬다. 고마운 일이었다. 된장 우거지국, 김 부스러기, 계란말이 등이 반찬이었다. 도저히 먹을 수 없어 경로당 할머니들은 그대로 상을 물렸다고 한다. 어찌 아니겠는가. 늘 이렇게 싱싱하고 맛난 음식을 드시는데.

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

주민들은 사도의 자연환경이 변해 가는 것이 안타깝다. 사도마을 앞 백사장은 모래가 좋았다. 그런데 선착장 부근 해변은 지금 자갈밭이다. 큰 돌들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돌 구경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모두 모래밭이었다. 선착장을 막으면서 모래밭이 유실됐다. 당장의 편리를 위해 미래 자산을 망친 경우가 어디 한둘이던가. 선착장이나 방파제도 조류의 흐름을 생각해 만들어야 마땅한데 환경에 미칠 영향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개발했다. 이제는 개발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도 주변은 해삼 서식지이자 해초 농장이다. 사도와 다리로 연결된 중도의 양면 해변 주변에서 특히 해삼이 많이 잡힌다. 사도의 해삼은 겨울이 제철이다. 겨울에는 또 파래, 김, 톳이 주로 나는데 이듬해 3월까지 나는 톳은 나물로 먹을 수 있는 나물톳이다. 3~4월 끝물에 나는 뿌리톳은 채묘해서 톳 양식장 종묘로 판다. 3~6월은 미역 철. 여름은 청각 철이다. 육지뿐이랴. 바다에도 저마다 제철이 있다. 생선도 그렇고 해초도 그렇다.

“해중에 기괴사봉 우리 사도는/임란의 호국얼이 숨 쉬는 섬/여수에 제일승지 분명하도다/자연의 돌거북은 철갑선본양/시루섬 별금강은 장관이로다/서양의 햇빛노을 파도를 안고/해상의 갈매기는 상상이 울며/고기 잡는 어선은 만선이라네.”

사도를 노래한 사도가다. 작은 섬이지만 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노래. 내륙에서는 좀처럼 만나 보기 어려운 마을 노래 아닌가. 섬은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란 사실을 이 노래를 통해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사도에 딸린 무인도들인 간데섬(중도)과 시루섬(증도)을 연결해주는 육계사주인 양면 해수욕장 또한 사도의 명물이다. 물이 최고조에 이르는 사리 물때에는 잠깐 잠기기도 하지만 두 무인도를 연결해 주는 이 해변은 늘 열려 있다. 양면 해변을 건너면 시루섬이다. 시루섬 해변은 사도를 거닐던 공룡들이 화석으로 남은 것이 아닐까 싶게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바위들은 저마다 말 없는 말로 자신의 내력을 들려주는 듯하다. 멍석 바위는 수십 명이 둘러 앉아 잔치를 해도 될 만큼 널찍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앉아 작전 회의를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얼굴 바위와 거북 바위 이채로워

얼굴 바위는 큰 바위 얼굴 같다. 저 얼굴은 이 섬에서 태어났다가 명멸한 수많은 섬사람들 중 누군가의 얼굴일 것이다. 거북바위는 진짜 거북이 모양이다. 이 또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멍석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거북이처럼 생긴 이 바위를 보고 거북선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물론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들어진 전함이다. 1413년(태종 13) 5월 초에 “왕이 임진강 나루를 지나다가 거북선이 왜선으로 꾸민 배와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남아 있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사도와 연결되는 무인도 시루섬 해변.
사도와 연결되는 무인도 시루섬 해변.
얼굴 바위와 거북 바위가 사도를 지키는 수호신이란 전설도 있다. 사도 인근 바다에는 용궁으로 들어가는 통로인 석문이 있는데 이 석문을 지나 용궁으로 가는 길에 혹시라도 악귀가 침범할 것을 대비해 용왕이 용궁 장군과 거북을 보내 그 길을 지키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고 보니 얼굴 바위는 용궁 장군의 얼굴인 듯하다. 사도 사람들은 혹시 저 용궁 장군의 후예가 아닐까.
다양한 전설이 깃든 거북바위.
다양한 전설이 깃든 거북바위.
얼굴 바위를 지나면 시루섬 뒤안에 거대한 동물의 고리처럼 생긴 30m 길이의 암석이 있다. 용미암이다. 악어나 천산갑의 꼬리처럼 단단한 느낌이다. 이 꼬리가 바로 승천하던 용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해저를 가로지른 뒤 제주 용두암에 도착한 흔적이라는 것이다. 용암이 분출하면서 남긴 흔적이지만 이야기의 스케일이 참으로 장대하다. 섬과 바다가 가진 상상력은 이토록 크다. 우리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되게 만드는 공간인 섬과 바다. 우리가 자주 바다로 섬으로 가야 할 이유다.

강제윤 시인은…

[여행의 향기] 8100만년 전 공룡들이 노닐던… 바다 한 가운데 '모래섬'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섬을 걷다》 《바다의 노스텔지어, 파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