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부산 유엔묘지의 힐리 병장
‘꽃 하나 피지 않고 한 포기 풀도 없는/ 거칠은 황토 언덕에/ 이미 고토(故土)에 돌아갈 수 없는 몸들이 누워/ 수정 십자가떼 바람에 통곡하는 수영(水營) 앞바다.’

김광균 시 ‘UN군 묘지에서’의 첫 부분이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누워 있는 유엔군 참전용사는 16개국 2300여 명. 처음엔 21개국 1만1000여 명이었으나 하나둘 고국으로 돌아가고 이들만 남았다. 영국군 885명 등 영연방 전사자들은 숨진 곳에 묻는 풍습에 따라 이곳에 안장됐다.

묘지가 처음 조성된 1951년 4월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거칠은 황토 언덕’이었다. 이듬해 1월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이 유엔사절단 참배에 앞서 묘지를 파란 잔디로 덮어달라는 주문을 받고 청보리를 옮겨 심어 화제를 모았던 곳이다. 지금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이자 최고 수준의 공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묘비마다 숱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영연방 27여단 산하 호주 왕실 3대대 소속의 빈센트 힐리 병장은 원주 매화산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우다 24세에 전사했다. 4남6녀 중 장남인 그는 준수한 외모와 큰 키로 육군잡지 표지모델까지 지냈다. 그의 전사 소식은 청천벽력 같았다. 아들 묘비라도 만져보고 싶었던 어머니 델마는 10년간 통조림공장 품삯을 모아 1961년 부산에 왔다. 2주간 1만5000㎞의 뱃길을 달려와 ‘영혼의 재회’를 이룬 어머니는 아들 묘역에서 담아간 흙과 돌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다녔다.

지난 5월에는 힐리의 외조카인 여성 언론인 루이스 에번스가 이곳을 찾았다. 그 옛날 외할머니의 여정을 다큐멘터리 영상에 담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힐리의 한국 엄마’ 역할을 한 참전용사 부인 김창근 여사와의 특별한 인연도 확인했다. 김 여사는 해마다 힐리의 묘소에 헌화하며 생전의 델마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들의 관계는 손녀 간 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최연소 전사자(17세)인 호주의 J P 돈트 상병 묘비도 있다. 녹지대를 흐르는 수로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최근엔 영국의 맥코터와 프랑스의 레이몽 등 유언에 따라 사후에 묻힌 노병들도 있다. 부부·형제묘도 많다. 결혼 3주 만에 전투병과 간호장교로 참전한 호주의 허머스톤 부부는 남편에 이어 60여 년 만에 합장됐다. 미국의 마테나, 호주의 셰퍼드, 영국의 헤론, 우리나라의 홍옥봉 등의 부부묘와 캐나다의 허시 형제묘도 있다.

내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자 정전협정 기념일. 이곳의 ‘꺼지지 않는 불’ 조형물처럼 전몰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대들의 피로 물들인 신세계의 철문 위에/ 그대들, 만년을 지워지지 않을 이름이 되라’(김광균)는 시구처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