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고참 과장 이상 직원들은 조사국 전성기이던 1998~2005년에 대해 두 개의 상반된 기억을 떠올린다. 첫 번째 기억은 ‘경제 정의’를 다시 세운다는 깃발 아래 재벌을 벌벌 떨게 한 ‘영광’의 시기다. 하지만 거침없이 부과한 과징금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로 줄줄이 취소되고 무리한 조사라는 비난을 한 몸에 받은 ‘굴욕’의 세월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조사국 부활’이 현실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공정위에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권한 강화로 위상을 높일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자칫하면 ‘칼잡이 역할’만 하다가 쉽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조사국 부활에 대해 ‘양날의 검’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조사국 부활 칼 빼든 공정위…기대 반, 우려 반
2년 반 동안 5대 그룹 네 차례 조사

16일 공정위에 따르면 조사국은 1998년 5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약 2년 반 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를 집중 조사했다. 이 기간 현대 대우 삼성 LG SK 등 5대 그룹 소속 계열사들은 총 182일 동안 네 차례(그룹이 해체된 대우는 세 차례) 조사국의 타깃이 됐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 부채 의식이 있던 대기업들은 수시로 들어와 경영 기밀 등을 요구한 조사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국은 5대 그룹 3차 조사(1999년 5~7월) 땐 조사 인력만 50명을 투입할 정도로 ‘저인망식’ 조사를 강행했다.

금융거래정보 제출요구권 등 막강한 칼을 휘두르는 조사국에 성과는 자연히 따랐다. 조사국은 총 27조8355억원 규모의 계열사 부당지원 거래를 적발해 과징금 2523억원을 부과했다. 당시 30대 대기업 중 계열사 부당지원 꼬리표를 달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로 공정위의 조사는 전방위적이었다. 전원회의가 열리던 공정위 심판정은 심결을 기다리는 기업인으로 좌석이 없을 정도였다.

조사국 전성기 때 패소율 급상승

주가가 치솟던 조사국의 위세가 한풀 꺾인 것은 2001년부터다. 조사국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들이대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기업들은 ‘억울하다’며 서울고등법원에 연이어 행정소송을 냈다. 1년에 수백 개 대기업 계열사를 훑다 보니 곳곳에서 허점이 발견됐다. 기업들은 공정거래 전문 법무대리인을 고용해 공정위의 허점을 끈질기게 파고들었고 판사들은 계속해서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에 대법원이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다”고 결론낸 것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이후 약 8건의 계열사 부당지원 소송을 스스로 취하했다.

소송 패소율로도 증명된다. 조사국이 본격 활동하기 전인 1997년 공정위의 패소율(해당 연도에 제기돼 대법원에서 ‘전부 패소’로 결론난 사건 기준)은 13.6%였지만 1998년 19.4%로 급상승했다. 2000년 25.0%, 2001년엔 25.4%까지 치솟기도 했다.

공정위는 부랴부랴 소송 전담 조직을 강화하는 등 역량 강화에 나섰지만 무리한 조사란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노무현 정부는 2005년 ‘기업 부담’을 명목으로 조사국을 해체했다.

내부에서도 기대·우려 교차

공정위 내부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우선 ‘위상 강화’에 대한 기대가 나온다. 조사가 수월해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30~40명의 인원이 한 번에 투입되면 증거 확보 등 조사역량이 크게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과거처럼 ‘칼잡이’로 쓰이다가 버려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공정위 내부에선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처럼 30~40명이 한 번에 투입된다고 성과가 난다는 보장이 없단 얘기가 나온다. 자칫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조사를 하다 보면 행정소송 패소율이 높아질 것이고, 결국 공정위의 신뢰도 하락으로 연결될 것이란 의미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