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한 질책과 '유리창 깨서라도 구하라' 지시도 받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장이던 김장수 주중대사가 첫 보고를 서면으로 했다고 확인했다.

김 대사는 28일 베이징(北京) 특파원단과 간담회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께 첫 보고를 서면으로 한 것으로 돼 있더라"며 "관저에도 하고 집무실에도 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첫 보고가 서면이었던 이유에 대해 "유선도 필요하다.

그것은 청와대에 물어봐라"고 말했다.

청와대 측이 첫 보고가 유선이었다고 했다가 나중에 서면이었다고 바꿔 말한 것에 대해서도 "내가 답하기 부적합하다.청와대 발표 이상으로 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첫 보고 이후 자신이 "오전·오후 6∼7번 정도 유선(전화) 보고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6∼7번 중에는 대통령이 (전화를) 하신 것도 있고 내가 드린 것도 있고 그 정도 통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시 몇분까지만 보고를 한 후 그 다음부터는 일절 보고를 하지 않았다며 비서실,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이 있기 때문에 그 쪽에서 전화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정상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상황이었느냐는 질문에 "지시를 몇 번 했다.별도로 본인이 전화를 하셔서 지시를 했었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자신이 세월호 선체가 기울어져 뒤집어졌고, 승객들이 그 안에 있다는 사실도 보고했다고 전했다.

또 "오후 2시 이후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보고를 했을 때 심한 질책을 받았다"며 질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왜 구했다고 했다가 그게 아니라는 식의 통계의 불확실성, 거기에 대한 질책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대사는 또 박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하라", "선실을 다 뒤져서 깨서라도 구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지시사항을 국가안보실이 구조 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사는 대통령이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방문해 했던 첫 질문이 "일몰 전에 생사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가" 등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듯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순수한 '이노슨트 와이'(innocent why) 차원에서 물어보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간담회가 끝난 뒤 특파원단에 보낸 추가 답변에서 "유선과 상황보고(서면보고)의 차이는 10분 이내이고 유선보다는 서면보고가 낫다고 생각했다"고 첫 보고가 서면이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투입된 구조인력, 현재 구조상황, 승선인원, 학생숫자, 사고경위, 위치파악 등을 위해 보다 세부적인 상황을 포함해 서면보고를 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사의 이날 발언은 청와대가 지난 19일 홈페이지 '오보·괴담 바로잡기'코너에 올린 세월호 7시간의 박 대통령 행적 내용과 거의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김 대사는 박근혜 정부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직하다가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물러났고, 2015년 3월 주중대사로 부임했다.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js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