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성에 해외매출 많은 다국적기업 실적 압박 우려

달러 지수가 13년여 만에 최고치로 올라서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강(强)달러는 당장 미국 수출업자의 가격 경쟁력을 해쳐 이들이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제조업체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다국적 기업에도 달러화 강세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에 미국의 중소기업은 비교적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들은 트럼프 차기 대통령이 약속한 보호무역과 인프라 투자 확대로 혜택을 볼 수 있어서다.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외국 기업에 미칠 긍정적 효과가 미국 기업에 미칠 부정적 효과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0개 업종의 글로벌 기업에 미칠 강달러의 영향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애플(IT), 해외매출 비중 높아 이익 감소 불가피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인 애플은 미국 외에서 매출의 3분의 2를 벌어들이고 있다.

중화권 매출이 22%, 유럽 매출이 23%를 각각 차지한다.

달러화 강세는 이미 애플의 3분기 실적에 가시적인 타격을 입혔다.

팀 쿡 애플 CEO는 중국 위안화 약세로 중화권의 매출 증가율이 3%포인트 줄었다고 말했다.

애플이 영국 등에서 제품 가격을 인상했지만 환율 변동은 이 회사의 매출총이익을 60~70bp(베이시스 포인트·1bp=0.01%포인트) 가량 줄이는 결과를 빚었다.

루카 마에스트리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달러화의 추가 강세를 대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강달러가 뉴노멀이 된 만큼 우리는 이에 순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BMW(자동차), 강달러 효과에 '꿩 먹고 알 먹고'
미국 대선이 끝난 뒤 달러화가 강세를 지속하자 BMW 주가는 7% 가량 상승했다.

달러화 강세로 미국 매출의 본사 송금액이 부풀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엑산 BNP 파리바 증권은 BMW 자동차의 27%만이 미국에서 실제로 생산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유럽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달러는 유럽의 생산비를 낮추고 미국 매출액을 늘리는 두 가지 긍정적 효과를 BMW에 가져올 수 있다.

도미니크 오브라이언 애널리스트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감세, 인프라 투자 확대 방침도 소비자 심리를 개선해주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긍정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 에미레이트(항공), 달러 연동된 디르함에 영업환경 악화
두바이의 에미레이트 항공은 올해 상반기의 순익이 75%나 급감한 배경으로 도전적인 영업 환경과 달러화 강세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디르함 통화가 미국 달러화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약세를 보이는 기타 통화로 이뤄진 매출의 본사 송금액은 당연히 감소한다.

달러화 강세는 미국행 여객기의 항공요금을 올림으로써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좌석의 과잉 공급에 따른 항공권 가격의 하락이 영업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 피어슨(교육), 미국 매출 비중 높고 파운드가치 떨어져 긍정적
영국의 피어슨 그룹은 매출의 3분의 1 가량을 미국에서 벌어들인다.

미국에서 거두는 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 때문에 달러화 강세로 톡톡한 매출 증대 효과를 보고 있다.

피어슨 그룹은 올해 1~9월 매출이 7% 줄었지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 덕분에 실질적으로는 3% 감소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올해 환율 전망을 파운드당 1.47달러로 보고 있었으나 1~9월의 평균 환율은 파운드당 1.38달러였다.

◇ 프록터 앤드 갬블(소비재), 환차손 탓에 해외시장 가격 인상
세계 최대의 소비재 업체인 미국의 프록터 앤드 갬블(P&G)도 해외매출의 본사 송금액이 줄어들고 있어 부심하고 있다.

해외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가에서 자재를 구입하는 복잡한 공급망도 영향을 미친다.

제품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환율 변동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지만 세제에서는 독일의 헨켈, 1회용 기저귀에서는 일본의 유니참 등과 경쟁하는 관계로 가격 인상에도 한계가 있다.

시장 점유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인터콘티넨털(호텔), 테러 악영향에 환율 급변 겹쳐 경영환경 악화
크라운 플라자, 홀리데이인 같은 호텔 체인을 운영하는 인터콘티넨털 호텔 그룹도 강달러의 피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터콘티넨털 호텔 그룹은 경상비의 50%, 부채의 70%를 파운드화로 표시하고 있다.

회사측은 환율의 변동성이 지속함에 따라 올해 실적에 충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 변동 외에도 업계에서 중요한 지표로 삼는 가용 객실당 매출(revpar)이 올해 들어 성장이 둔화했고 관광대국인 프랑스와 터키, 벨기에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등 경영환경도 좋지 못한 상황이다.

◇ BP(석유), 강달러에 수요 위축 우려
강달러는 석유 제품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석유 회사에는 부정적이다.

석유 거래는 미국 달러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달러화 강세는 수요를 위축시킨다.

미국 대선이 끝난 뒤 국제 원유 가격이 3개월 만에 다시 배럴당 44달러 밑으로 내려간 요인의 하나는 달러화 강세였다.

영국의 BP와 로열 더치 셸은 배당금을 달러화로 책정하지만 국내 주주들에게는 파운드화로 지급한다.

국내 주주들은 강달러 덕분에 더 많은 배당금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외국인 주주들은 유가 하락이 석유회사들의 실적을 해쳐 이들이 배당금을 계속 지급할 수 있을지를 따질 것이다.

◇ 푸마(의류), 환율 급변은 아웃소싱에 악재
푸마는 물론 아디다스와 나이키와 같은 주요 스포츠 의류 업체들은 제품 생산을 아웃소싱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이 아시아납품업체들과 미국 달러화로 공급계약을 맺고 있어 환율변동은 악재가 된다.

푸마는 지난해 순익이 환율 변동 탓으로 42%나 감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푸마의 올해 3분기 매출은 8.3% 증가한 것으로 돼 있지만 환율변동이 없었다면 11%였다는 것이다.

◇ 월풀(가전), 정치불안 따른 가전수요 위축 우려에 강달러까지 겹쳐
미국 월풀의 3분기 매출은 0.5% 증가에 그쳤다.

환율변동이 없었다면 전년 동기 대비 플러스 성장을 보였을 것이라고 회사측은 주장한다.

월풀은 환율 문제 외에도 유럽과 미국에서 최근 일어난 정치적 변동이 세탁기를 포함한 대형 가전제품의 판매에 차질을 주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증대되면 소비자들은 고가 제품의 구매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월풀은 강달러가 가격 전쟁의 충격을 증폭시킨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달러화 강세가 저가 수입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서 세탁기를 덤핑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 랜드골드 리소시즈(금광), 금값 하락과 함께 주가도 미끄럼
금값은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이후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자 온스당 50달러가 내린 1천225달러선으로 미끄러졌다.

달러화가 오르면 기타 통화를 보유한 사람들에게는 달러화로 표시되는 금값이 그만큼 비싸게 보이기 때문이다.

런던 증시에서 금광업체인 랜드골드의 주가도 덩달아 하방 압력을 받고 이다.

이 회사 주가는 미국 대선이 끝난 이후 16%나 내렸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js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