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은행 코코본드, 수요예측 전에 팔았나
마켓인사이트 4월10일 오후 4시

우리 광주 전북 등 3개 은행이 지난달 발행한 코코본드(조건부자본증권)를 수요예측도 하기 전에 투자자들에게 선(先)판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요예측 전 선판매는 채권가격 결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금융투자협회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해당 은행과 발행을 대행한 증권사는 시장의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 협회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다.

1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우리 광주 전북 등 3개 은행이 지난달 코코본드를 발행하기 위해 각각 수요예측을 한 결과 정확히 모집액만큼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우리은행은 2500억원어치를 발행하는데 매수 주문도 2500억원이 들어왔고, 광주은행(700억원)과 전북은행(800억원)도 모집액과 주문액이 일치했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블라인드 형식(실시간 주문 현황 미공개)으로 진행되는 수요예측에서 모집액과 주문액이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더구나 이런 일이 짧은 기간에 세 번이나 연속해서 일어났다는 건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미리 정한 가격으로 투자자를 확보해놓은 상태에서 수요예측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수요예측은 채권을 발행하기 전 금리, 물량 등 발행 조건을 결정하기 위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수요 조사다. 채권 발행 가격(금리) 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2012년 4월 도입됐다. 이 절차를 거치기 전에 발행 회사가 임의로 금리 등을 정해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것은 금융투자협회의 ‘증권 인수 업무 등에 관한 규정’ 위반이다.

이들 은행의 코코본드는 지난달 초 발행 계획이 처음 알려졌을 때부터 투자자 모집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지난 2월 유럽에서 독일 도이치은행이 과거 발행한 코코본드의 이자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진 이후 국내에서도 코코본드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코코본드는 평상시에는 채권으로 분류되지만 발행사가 자본 부족 등 어려움을 겪게 되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원금이 전액 상각되는 고위험 채권이다.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주로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려는 은행이 발행한다.

한 증권사 채권 발행 담당 임원은 “수요예측에 나섰다가 실패하면 회사 평판에 금이 갈 뿐 아니라 향후 자금 조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이를 우려한 은행들이 수요예측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코코본드를 미리 판매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리은행과 전북은행은 각각 지난해 3월과 2014년 11월 코코본드를 발행하기 위해 시행한 수요예측에서 투자자 모집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코코본드 발행을 대행한 증권사들이 중소형사라는 점도 이런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투자자 모집에 실패하면 발행을 대행한 증권사는 팔리지 않은 물량을 대신 떠안아야 한다. 우리은행 코코본드는 하나금융투자(자기자본 1조8000억원)가, 광주 전북은행은 동부증권(6800억원)이 각각 발행 실무를 맡았다. NH투자증권 등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의 대형사와 비교해 인수 여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투자자 모집 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수요예측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지적이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